가을에 나오는 시집들

입력 2005-09-13 11:46:25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녘엔 바람을 풀어 놓아 주소서….'

릴케의 시 '가을날'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수확을 앞둔 들녘의 풍요로움과 함께 낙엽을 떨구어야 하는 실존적 고독이 공존하는 가을. 시인들의 가을에 대한 서정도 다르지 않다.

매일신문 신춘문예 출신으로 소담스러운 언어미학과 삶의 소박한 풍경들에 대한 섬세한 시선을 보여온 안도현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가 문학동네에서 나왔다.

'아무것도 아닌' 사물들에서 빛나는 의미를 길어올리는 시인 특유의 상상력의 진가를 새삼 확인할 수 있는 시집이다. 시인의 각별한 눈길 덕분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비로소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게 되고, 곧 상처 덩어리로 끙끙대는 우리 삶이 되며, 마침내 이 가을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한 편의 시가 된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여러 빛깔의 자아를 소화해 내면서도 특히 농촌의 토속정서를 드러내며 자연에 대한 미의식과 토속적 세계에 대한 애정, 그리고 삶의 작은 발견과 고뇌 등을 표출한다.

경북 의성 출신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하종오 시인은 열두 번째 시집인 '님 시집'(애지 펴냄)을 출간했다. 이번 시집은 그대로 56편의 농촌소설이라 해도 좋을 만큼 다양하고 사실적인 서사를 담고 있다.

그저 낯익은 농촌의 일상을 담은 그의 서사가 노래처럼 아름답고 신화처럼 신비로운 아우라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시인은 이 시대 농촌의 비극적 희극 혹은 희극적 비극을 깨달음에 찬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1998년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문성해 시인은 첫 시집 '자라'(창비)에서 타인에 대한 애틋한 연민을 바탕으로 소외된 자들의 생명력 넘치는 세계를 그리고 있다. 시인은 너절하고 누추한 변두리에서도 우리네 일상의 진면목을 보여주며 시와 시인의 종요로운 존재방식을 제시한다.

포항 출생인 박남철 시인은 여섯 번째 시집 '바닷속의 흰머리뫼'(문학과 지성사)를 내놓았다. '자본에 살어리랏다' 이후 8년 만의 시집으로 그동안 써온 34편의 시를 묶은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위선과 거짓으로 가득찬 현실에 대해 날을 세웠다. 명징한 가을 하늘 같다.

한편 이중삼 시인의 시집 '꽃대'와 강재현 시인의 '그리움이 깊은 날에는' 등이 북랜드에서 선보였다. 가을이라는 계절에 절실하게 와닿는 그리움에 관한 시편들이다. 서정윤 시인은 "대중의 시심을 대신 읽어줄 수 있는 시인의 감성이 더욱 필요한 계절"이라며 "독자들의 감성을 일깨우기에 충분한 시들에 눈길을 보낼 만하다"고 말했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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