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밖' 사람들-김천 증산면 황점리 원황점 마을

입력 2005-09-10 09:25:27

"지난 68년 김천 지례성당 윤에릭(독일인) 신부가 황점 공소를 첫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주민들은 의관을 갖추고 당시 귀했던 맥주를 어렵게 구해 대접했습니다. 하지만 윤 신부는 맥주를 마신 뒤 얼굴을 찌푸렸어요. 난생 처음 맥주를 본 주민들이 정종처럼 따뜻하게 덥혀서 권했던 거죠. '소 오줌'인 줄 알았던 윤 신부도 주민들의 정성을 알고는 눈물을 흘리며 감동했다고 합니다."

향토사가 문재원(58·김천시 지례면)씨의 재미난 옛 이야기들을 들으며 김천시 증산면 황점리 속칭 원황점 마을을 찾았다. 김천 시내에서 감천~성주댐을 지나 무흘구곡으로 통하는 30번 국도변 성주댐은 만수위를 뽐냈고 굽이치는 대가천은 가슴 속까지 후련하게 한다.

장전리쪽으로 가다 황점리 입구로 들어서면 마을까지는 차량 한 대가 겨우 빠져 나갈 정도로 길이 좁다. 가도 가도 산이다. 이런 길을 10리 정도 들어가서야 마을이 보인다. 천주교 박해를 피해 주민들이 이주한 곳이니 이런 골짝을 택했으리라.

아! 그런데 이게 웬 일. 집들이 마치 별장같다. 마을이 '펜션타운'으로 바뀐 건 지난 2002년 태풍 루사때문. 산사태와 계곡 물이 마을을 덮치면서 모든 집들을 휩쓸었고 주민들은 1년여 컨테이너 생활을 한 끝에 2003년 9월 새 집에 입주했다.

해발 600m 고지에 위치한 마을의 공기는 도심과는 완전 딴 판이다. 버스를 타려면 큰 도로까지 10리를 걸어 나와야 하기에 이 곳 주민들은 어지간해선 바깥 출입을 잘 않는다.

김종범(73)씨는 3살때 선친을 따라 이 곳에 정착했다. 아내 전종열(68)씨와 아들 용태(42)씨 내외, 초등학교 5학년인 손자 등 다섯 식구가 담배, 고랭지채소 등 밭농사와 벼농사를 지으며 산다.

"바깥 출입 할 일이 뭐 있어. 그저 두세달에 한 번 이발하러 나갈 뿐이야." 김씨의 말에 "1년 해봐야 바깥 출입은 서너번에 불과하다"고 부인 전씨도 맞장구를 친다. "60, 70년대만 해도 30가구는 족히 됐는데 하나 둘 빠져 나가고 지금은 7가구에 18명이 모두야. 한 식구같아 좋은 점도 있지만 그래도 마을같다는 느낌은 안들어."

장수락(72) 할머니는 스무살때 시집와 이 곳에 줄곧 산다. 자식들은 도시로 나갔고 5년전 할아버지를 먼저 보내 지금은 혼자다. "밭일하고 신앙생활 열심히 하는게 건강 비결"이라고 살포시 웃는다.

11년전 할아버지를 사별한 장경례(76) 할머니는 별명이 '장양'이다. 나이에 맞지않은 해맑은 미소와 살림, 농사일 모두 깔끔하게 한다해서 붙여진 것. "태풍 루사때 가재도구 하나 못 건지고 겨우 몸만 피했어. 덕분에 새집 지어 호강하고 살지. 죽기전에 이런 새집에 살 줄 누가 알았겠어."

뇌성마비 장애 2급인 김동조(40)씨는 마을의 '귀염둥이'다. 동작과 발음은 어눌하지만 얼굴엔 늘 웃음이 가득하다. 경운기 모는 일, 산 타는 일 등 마을에서 1등하는 일도 너무 많다. 아버지 김병락(75)씨가 5년 전 중풍으로 몸져 누우면서 동조씨는 어머니 김옥선(73)씨와 함께 논 4마지기, 밭 1천500평 농사일을 모두 한다.

동조씨는 "새집 짓고 나서 집이 더 추워졌다"고 엄살이다. 동조씨를 비롯, 다른 집들도 기름값이 무서워 보일러를 제대로 돌리지 않기 때문. 그래서 최근에는 나무보일러로 대부분 바꿨다. "옛날 집에 살 때는 좀 더러워도 그냥 살았는데 이젠 매일 청소해야 하는 점도 귀찮다"고 동조씨가 너스레를 떨자 어머니 김씨는 "그래도 효자 아들"이라며 사랑스런 눈길을 보냈다.

당초 마을과 장괘 터가 있었다는 산을 올랐다. 산길 안내는 동조씨가 맡았고 이선화(45·여)씨도 함께 했다. 예전에 있었던 산길은 태풍 루사때 모두 유실됐다. 잡목, 잡초가 우거져 마치 정글같고 뱀이라도 나올까 겁이 났다. 동조씨는 길도 없는 풀숲을 잘도 헤쳐 나간다. 뒤 따르는 사람은 아랑곳없이.

하지만 산 7부 능선쯤의 장괘터는 흔적을 찾아 볼 수 없고 집터만 희미하게 남아 있다. 당시 주민들의 고생을 실감하며 산을 내려왔다.

해 저물 무렵 제일 좋은(?) 집에 사는 김정선(48)·이선화(45)씨 집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공소가 있는 탓에 1968년 윤에릭 신부님이 마을에 발전기를 설치해줘 전기를 일찍부터 썼죠. 당시 저희 집에 TV가 있어 매일 밤 TV보러 주민들이 구름처럼 모였어요. 방이 비좁아 집 바깥 창문가에 서서 보기도 했죠".

이들 부부는 대를 이어 양봉을 한다. 350군의 벌통을 갖고 아카시아 꽃을 따라 전국을 누빈다. 이렇게 생산한 꿀은 '도마네 꿀집'이란 브랜드를 달고 서울, 대구 등지로 나간다. 브랜드 인지도가 꽤 높다. 선화씨는 "여름엔 피서겸 해서 사람들이 좀 들어오지만 겨울엔 사람 구경하기 힘들다"며 "20여년 전 결혼 초엔 젊은 사람들이 없어 할머니들과 친구처럼 지내야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저녁 시간이 훌쩍 넘어서야 임근철(37) 박혜정(28)씨 부부가 귀가한다. 공소회장을 맡은 임씨는 김천시청 도로보수원이다. 결혼 초 도시 생활을 접고 고향에 정착한 그는 농사일도 하며 현민(8·증산초교 1년) 현진(6) 두 아들과 도란도란 전원생활을 만끽하고 있다. 혜정씨는 마을에 친구할 만한 사람이 없는 게 늘 아쉽다. "이젠 적응을 많이 했어요. 마을의 재롱둥이인 두 아들의 교육 문제가 마음에 걸리지만 마을을 떠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흙벽돌과 통나무를 잘 조화해 웰빙형으로 지은 정선씨의 집은 정말 아늑하다. 집앞 계곡 물소리와 처마 밑 풍경소리가 꿈결처럼 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아침이다. 천사같은 주민들의 미소를 못내 아쉬워하며 바깥 세상으로 빠져 나왔다. 김천·이창희기자 lch888@imaeil.com

사진 : 마을 중간을 흐르는 황점 계곡은 마을과 잘 어우러져 경관이 일품인데다 청정 그 자체이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