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늦깍이 작가 김경동

입력 2005-09-01 11:47:12

가인 이정보(李鼎輔)는 '사람이 늙은 후에 또 언제 젊어 볼꼬 / 빠진 이 다시 나며 센 머리 검을쏜가 / 세상에 불로초 없으니 이를 서러워하노라'라고 노래했었다. 인간은 백발이 성성하더라도 마음만은 언제나 청춘과 같고 싶어지는 게 누구나 지니고 있는 상정(常情)이 아닐까. '몸은 늙어도 마음은 늙지 않는다(身老不心老)'는 옛말도 그래서 나왔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리스의 철학자 소포클레스는 '늙어가는 사람만큼 인생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고 갈파한 바 있다.

◇ 인생을 사랑하는 깊이와 문학도 소포클레스가 말한 그런 함수 관계를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우리 문학이 성숙해지면서는 늦깎이 작가들이 빈번하게 등장해 '문단 조로(早老) 현상'에 경종을 울리곤 했다. 소설가 이병주 박완서씨 등이 40, 50대에 등단해 왕성한 창작과 문학적 성취를 일군 대표적인 경우다. 2001년엔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직에서 은퇴한 음악 이론가 이강숙 교수가 60대 중반에 소설가로 등단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 올해 고희를 맞은 김경동 서울대 명예교수가 최근 소설가로 등단, 지식인 늦깎이 작가 대열에 합류해 화제다. '문학사상' 9월호에 원고지 200장 분량의 중편소설 '광기의 색조'를 발표한 그는 향토 출신으로 명망 높은 원로 사회학자일 뿐 아니라 학술원 회원이기도 해서 각별히 관심을 모은다.

◇ '광기의 색조'는 우리 사회의 최고 지식인 집단이 어떤 이야기를 나누며, 어떤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조명해 흥미롭다. 특히 정권의 햇빛을 따라다니는 해바라기 지식인의 행태를 따갑게 질책하고 있다. 반면 '비겁하다'는 비판 속에서도 평생 온건중도 노선을 걷다가 은퇴한 한 정치학자의 진정성을 부각시키고 있어 '사회학자로서의 밀도 높은 고민이 담겨 있다'(문학평론가 이어령)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역시 향토 출신인 이강숙 한국예술종합학교 석좌교수가 지난해 장편소설 '피아니스트의 탄생'(현대문학사 발간)을 내서 저력을 보여줬다. 음악 교육과 상상력, 창의력 개발 등이 이 장편의 주제였듯이, 김경동 서울대 명예교수가 첫선을 보인 중편 역시 그의 전공에 바탕을 둔 작품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10년 전 '사회비평 시'라는 독특한 형식의 시를 발표하기도 했던 김 교수의 새로운 문학적 도전에 기대를 해본다.

이태수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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