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지역주의 논쟁이 뜨겁다. 마땅히 저만치 떨어져 있어야 할 지역균열이 국민 생활과 정치영역 전반에 걸쳐 절대적 영향을 미치니만큼 원인과 해결책 찾기는 끊임없다. 주된 관심은 제도개혁이다. 하지만 그것이 지역주의 해소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는 민주주의와 정당정치를 최고 이념적 가치로 받아들이고, 이를 실현하려면 시민사회가 다원성과 개방성을 갖춰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민주주의와 정당정치란 역사적으로 살펴보아도 그러한 사회에서 더 건강하게 자라났다.
따지고 보면 우리 사회는 정당정치의 성공 여건이 세계 어느 곳 못지않게 잘 갖춰졌으나,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개인마다 종교가 무엇이고 소득이 얼마인지를 물으면 다종교, 다계층 사회의 균열이 드러나는데, 그토록 분명한 종교, 계층 분화에 응답하면서 이익을 지켜 내려는 정당은 드물다. 거의 모든 정치 결사체들이 막연히 국민이라는 전체에 봉사한다고 주장할 따름이다.
서구 정당의 경우 구체적인'부분'을 지향하는 경향이 강한데, 우리 정당은 대체로 이미 형성된 다원적 갈등구조를 무시한 채 모든 이들의 옹호조직을 자처한다. 그러다 보니 시민사회 내부의 대립 현장에 뿌리내리거나 대중을 정당 안으로 끌어들이기보다 갈등의 근원을 정복하고자 애쓸 때가 많다. 이것이야말로 정치공간이 온통 원론적 주장과 유사 정책상품으로 가득한 이유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 정당들은 부분을 버리고 전체를 지향할까? 지역균열이 아니라도 사회 안에 엄연히 존재하는 다양한 균열구조가 자기 정당을 가지기 어려운 까닭은 무엇인가? 이는 정당의 합리적 선택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슘페터는 표를 얻기 위한 정당 경쟁을 시장의 작용에 비유했다. 정치인은 기업인이 시장에서 이윤을 극대화하듯 유권자의 지지를 얻으려는 행위자이며, 유권자 또한 시장의 소비자처럼 자신의 선호를 쫓아 정당이 제시한 정책상품을 구매한다는 것이다. 생태인은 환경정책, 고령자들은 연금정책, 충실한 신앙인들은 낙태문제에 관심 기울이는 식이다. 그러므로 올바른 정당이라면 다수 집단의 이익을 대표하고, 시민사회 내부의 특정 의사가 수렴된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데 주저할 까닭이 없다.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정치 소비자 확보의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뚜렷한 선호를 가진 정치 소비자의 존재는 정당과 정치인이 차별적이고 확신에 찬 행동을 하도록 유인한다. 비록 경쟁에 실패해 시련이 닥치더라도 시장의 우호적 선호집단은 갑자기 사라지지 않으며, 언제가 자신들이 소비자로부터 커다란 책임을 부여받으리라는 믿음을 준다.
우리 시민사회에도 선호구조는 분명하게 존재한다. 하지만 종교, 소득, 성별 등 어느 것 하나 그 선호가 외부에 뚜렷이 드러나지 않고 정책 구매에 일관성조차 없어 신뢰를 주지 못한다. 따라서 정당체계는 모든 계층과 집단 이익을 고려해 정강과 정책을 내세우는 정당 조합주의 형태를 보인다. 정당이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호소력 강한 정책 제시에 몰두할지라도 판매 가능성은 매우 불투명하니 신뢰 부여가 망설여지는 탓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가장 커다란 문제점 가운데 하나인 지역주의는 불분명한 시장 선호구조에 대한 정당의 반응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 사회의 지역구도가 이처럼 견고한 것은 정당의 입장에서 볼 때 명확히 표현되지 않는 다른 갈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역관련 선호 파악이 수월하고, 비록'지역 정당'이라는 꼬리표가 붙을지언정 특정 지역에 신뢰를 부여함으로써 되돌아올 이익이 그 비용과 위험을 충분히 넘어서리라 믿어서이다. 결국, 다원적 갈등구조를 가진 시민사회가 그에 걸맞게 선호를 결정해야 정당의 행태와 지역주의 구도는 달라진다.
오창균 대구경북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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