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 대표팀, '감독들의 무덤'

입력 2005-08-23 15:01:05

한국 축구도 가히 '감독들의 무덤'이라 부를 수있을 만큼 '대표팀 사령탑 수난사'의 연속이었다.

외국인 감독으로는 다섯번째로 한국 대표팀 사령탑에 올랐던 요하네스 본프레레감독의 사퇴로 한국은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예선을 거치며 두 명의 감독을 갈아치우는 '진기록'마저 세웠다.

4번째 외국인 사령탑으로 지난 2003년 3월부터 한국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은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은 월드컵 및 아시안컵 예선에서의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지난해 4월 19일 중도 하차했다.

"대한축구협회와의 합의에 의한 계약 종료"라고는 했지만 8월 아시안컵이 끝날때까지 4개월 정도 남은 임기를 채우지 못한, 사실상의 경질이었다.

한국축구가 받아들였던 5명의 이방인 사령탑 중 월드컵 4강을 이끈 거스 히딩크감독을 제외하곤 모두 끝이 좋지 못했다.

지난 92년 28년만에 한국의 올림픽 본선 자력 진출을 이끈 첫 외국인 지도자 데트마르 크라머 감독(독일)은 선수 선발과 전술 운용 등에서 코칭스태프와의 불협화음으로 정작 본선 무대는 밟아보지도 못하고 퇴출됐다.

88년 서울올림픽에서 구 소련의 우승을 이끌었던 명장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은 95년 7월 한국 올림픽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았지만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본선에서 1승1무1패로 8강 진출이 좌절된 뒤 재계약을 하지 않고 현지에서 바로 고향으로떠났다.

한국인 지도자도 사정은 비슷했다.

92년 7월 대한축구협회 첫 전임 지도자로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김호 감독은 어렵게 94년 미국월드컵 본선행을 결정지었지만 예선에서 일본과의 경기에 참패하며자력으로 본선에 오르지 못했다는 이유로 경질 위기까지 내몰렸다.

차경복 당시 기술위원장의 사퇴로 파동은 일단락됐지만 김 감독은 본선에서 2무1패의 성적으로 16강 진출에 실패, 결국 사령탑에서 물러났다.

박종환 감독은 지난 95년 4월에 취임, 6월에 열린 코리아컵대회 준결승에서 약체 잠비아에 2-3으로 패해 두달여 만에 퇴진당하는 수모를 당했다.

박 감독은 프로축구 일화를 이끌고 리그 3연패를 이루는 지도력을 발휘, 이듬해2월 대표팀 사령탑에 복귀했지만 12월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서 열린 아시안컵 8 강전에서 이란에 치욕적인 2-6 패배를 당하면서 다시 경질됐다.

일각에서 본프레레 감독의 후임으로 꼽고 있는 차범근 감독조차도 지난 98년 프랑스월드컵 본선에서 멕시코와 네덜란드에 잇따라 패하면서 현지에서 대회 도중 경질된 아픈 기억이 있다.

허정무 감독은 98년 10월 올림픽팀을 맡아 2000년 시드니올림픽 본선에서 역대최고 성적인 2승1패를 기록하고도 8강행이 좌절, 경질론에 휘말렸다.

후임 감독으로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여론 때문에 그해 10월 레바논 아시안컵까지 유임됐지만 결국 대회 3위에 머물면서 퇴진했다.

지난 2002년에는 히딩크 감독과 함께 월드컵 4강신화를 이룬 박항서 코치가 부산 아시안게임 감독 자리에 앉았지만 대회가 끝날 때까지만 임기를 보장하겠다는 협회와 갈등을 빚다 결국 해임되기도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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