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의 色다른 여름나기/美국립공원 자원봉사 대학생 오동엽씨

입력 2005-08-06 13:58:28

"대자연을 닮고 싶었죠"

푹 찌는 더위로 지치게 만드는 여름. 하지만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에게 한여름의 더위 타령은 통하지 않는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자아를 찾아, 꿈을 좇아 국내외에서 부지런히 뛰고 있는 젊은이들의 여름을 살짝 엿보았다.

오동엽(24·대구가톨릭대 조경학과)씨. 그는 지금 미국 애리조나주에 있다. 대학생들이 한 번쯤 생각하는 단순한 어학 연수를 위해 미국에 간 것이 아니다. 편하게 해외 여행을 하는 것도 아니다. 톱 들고 쓰러진 나무를 베고 철조망을 치기 위해 커다란 망치질을 하고 다리가 휘청거릴 정도로 무거운 배낭을 메고 급류를 건넌다. 광활한 애리조나주의 국립공원을 돌보는 자원봉사 일을 하고 있는 것.

그랜드캐넌국립공원, 뉴멕시코의 길라국립공원, 플래그스태프 근교의 월넛캐넌국립공원, 피닉스 인근 톤토국립공원…. 그가 주로 일하는 공원들이다. 하지만 공원이라고 해서 아담한 동네 공원을 생각한다면 오산. 아침에 텐트 밖으로 나오려다 벗어놓은 신발에서 튀어나오는 독거미와 전갈을 보고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고, 저녁을 먹는데 TV '동물의 왕국'에서나 보던 방울뱀이 꼬리를 흔들며 바로 옆으로 지나갈 정도로 산림이 우거진 곳이다. 세계 각국에서 온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트레일러에 짐을 싣고 3, 4시간씩 험한 비포장 길을 달리다가 작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트레일러 바퀴가 펑크나고 문짝이 다 떨어져나가 없어진 짐과 연장을 찾느라 진흙범벅이 된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다.

"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전공과 관련이 있는 미국 국립공원에서 한국에서 할 수 없는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었습니다. 또 한 번쯤은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에 대해 솔직하게 다가가 보며 제 미래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싶었어요. 가족 등 주변 사람들과도 떨어져 지내면서 그분들의 소중함도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는 지난해 여름 유럽 배낭여행을 하다가 우연히 체코에서 만난 학생으로부터 ACE(American Conservation Experience)라는 자원봉사 프로그램에 대해 알게 돼 서울에 있는 IWO(국제워크캠프기구)를 통해 미국 국립공원 자원봉사를 하게 됐다고 한다.

짧게는 4·8일, 길게는 3·6주씩 산 속에서 지내는 야영생활. 한낮 기온이 40℃를 넘나드는 피닉스 인근 톤토국립공원에서 일할 때는 정말 'Extreme(극한)', 'Challenge(도전)'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고생도 많이 했고 다시는 하기 힘든 멋진(?) 경험들을 했다고 한다.

"일하다가 선인장을 잘못 건드려 볼에 100개나 되는 선인장 가시가 박혀 고생하고, 코 밑은 이름 모를 벌레가 물어서 아직까지 상처가 남아있어요. 갑작스레 내린 비로 강물이 불어나 인간 다리를 만들어서 차례로 짐을 옮기는데 물살이 어찌나 센지 뒤로 거의 눕다시피 서있어야 했어요. 한 친구는 넘어져 한참을 굴러 내려갔는데 무모하게 강물에 뛰어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좋은 추억거리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조경학과 3학년을 마친 뒤 1년 휴학을 결심하고 지난 4개월 간 보낸 자원봉사 생활이 자신의 인생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한다. 학교 친구들은 졸업·취업을 준비하는 귀한 시간, 휴학하고 자원봉사하며 얻은 가장 큰 성과는 어떤 상황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 남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라고 했다. 또 세계 각국에서 온 50여명의 친구들과 동고동락하며 보낸 소중한 만남은 미처 생각지 못한 값진 성과라는 것.

"매년 겨울 스키장에서 안전요원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모아놓은 돈이 조금 있었지만 거의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왔는데 외국 친구들은 혼자 힘으로 일해서 번 돈으로 와서 생활하는 걸 보고 부끄러웠어요."

6개월 동안의 자원봉사 참가비·등록비가 모두 70만 원. 미국까지의 비행기 왕복 티켓이 115만 원. 나머지 미국에서의 숙식은 ACE측에서 제공하기 때문에 별로 돈 쓸 일은 없단다.

"밤에 잠을 깨우는 코요테 소리를 들으며, 곰이 정말 나타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의문을 가지며 야간산행을 하면서 자연의 힘 앞에서 인간은 너무 나약한 존재라는 것, 그리고 그런 자연을 보고 느끼며 꽤 성장한 제 자신을 알게 됐습니다."

앞으로 그는 함께 자원봉사 생활한 미국 친구가 사는 뉴욕에 가서 스스로 돈을 벌면서 혼자 힘으로 버티는 데까지 버텨 볼 계획이라고 했다.

"조경학에서 기념비적인 공원 센트럴파크를 비롯해 여러 훌륭한 공원이 있는 뉴욕에 꼭 가보고 싶었습니다. 누구에게나 편안함과 기쁨을 주는 공원을 설계하면서 살아가는 게 꿈이거든요. 아직 살 집, 일자리가 결정되지 않았지만, 저를 더 성숙시켜줄 좋은 시간이 될 것이라 믿기에 주저 없이 떠나보려고 합니다."

김영수기자 stel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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