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통해 배울 수 있어 행복"…장애딛고 판소리 고수된 조경곤(38)씨

입력 2005-07-29 10:46:12

"판소리 모습을 두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귀를통해 배울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인천시 서구 가정2동에 사는 1급 시각장애인 조경곤(38)씨의 직업은 판소리에서노래가 나올 때 북으로 장단을 맞춰주는 역할을 하는 고수(鼓手).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탓에 남보다 더 열심히 배워야 했던 조씨는 잠자는 시간을 빼고 하루 종일 판소리 연구와 연습에 몰두해 국악계에서도 '실력있는 노력파'로통한다.

젊었을 때 운동하다 사고를 당해 양쪽 시력을 잃은 조씨는 5년 동안 바깥 출입을 삼가며 좌절과 방황의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 그는 95년 4월 서울의 한 교회에서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된 최정란(36)씨의 도움으로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판소리를 배우기로 결심했다.

어릴 때부터 집안에서 국악을 즐기던 아버지와 친척의 영향을 받아 판소리에 관심을 갖고 있던 데다 시력은 잃어도 판소리를 배우는 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란판단에서였다.

그러나 시각장애인 조씨 앞에는 수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각 장애 자체도 걱정이었지만 더 참기 어려웠던 것은 "시각장애인이 어떻게판소리를 배울 수 있겠어"라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이었다.

하지만 이것들은 오히려 그에게 자극이 됐는지 조씨는 장애인이라고 무시를 당할 때마더 더 열심히 판소리를 배웠다.

조씨는 2년 전 겨울 판소리를 잘 한다고 소문난 고법 인간문화재를 찾아 전라남도 해남까지 내려가 혼자 자취생활을 하며 북을 잡기도 했다.

그는 이어 국내에서 고법 1인자로 알려진 김청만 국립국악원 예술감독으로부터고법을 전수받기 위해 지하철로 서울까지 왕래했다.

또 교육이 없는 날이면 조씨는 아침부터 아내의 도움을 받아 무게 18kg의 북과녹음기를 둘러메고 1km 떨어진 인근 약수터에 올라가 맹연습한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들에게 행여나 소음 피해를 끼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다.

또 저녁이나 밤 늦게 판소리를 듣고 싶거나 연주하고 싶으면 이불을 뒤집어 쓴채 연습하는 등 직접 보면서 배우면 단시간에 배울 수 있는 것도 남들보다 10배 이상 노력했다.

한 때 판소리 교육을 받으러 서울행 지하철을 타려다 선로 아래로 떨어진 아찔한 경험이 세번이나 된다고 그는 회상했다.

판소리를 배운 지 만 2년이 지난 지금 조씨는 판소리 고수의 실력을 인정받아최근 국악 경연대회 고법 부문에서 2차례 입상했다.

그는 또 오는 9월29일 인천 서구문화예술회관에서 국내 처음으로 시각장애인 고법 발표회를 앞두고 한창 연습 중이다.

조씨는 "비록 두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없는 장애인이지만 자녀에게 아버지가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 기쁘다"며 "앞으로 장애인과 정상인에게 무료로 가르칠 국악원을 운영하는 게 꿈"이라고 말한다.

조씨 부부는 성원(10)군과 성민(6)양 자녀를 두고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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