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관의 인물탐방] 21세기 한중교류협회 김한규 회장

입력 2005-07-29 09:14:37

"감춘 빛 내뿜는 중국 바로 알아야"

젊은 시절 공부는 미국에서 했다. 그러나 지금은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중국 관련 일로 보낸다. 국교를 맺기 전부터 시작, 중국을 다녀 온 횟수도 200여 차례가 넘는다. 스스로 중국통이라는데 망설임이 없다. 중국에서도 그를 창구로 인정한다. 월초에는 서부개발 및 빈부격차 해소와 관련, 중국 청해성에서 열린 중국정부 행사에 한국 대표로 초청을 받아 다녀왔다.

김한규(金漢圭.65) 21세기 한중교류협회 회장을 만나면 중국 이야기가 끝이 없다. 달변가인 그의 입에서는 중국을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서부터 최근 10년간 중국의 급속한 변화가 쉴새없이 이어진다. 오지 지역까지 고속도로가 뚫리고 있는 중국의 오늘을 보면 강대국 중국의 실체가 멀지 않았다고 본다. 미래를 위해 땀 흘리며 노력하는 중국인들의 모습도 그에겐 인상적이다.

회장을 맡고 있는 한중교류협회는 5년전 중국 측 제안으로 만들어졌다. 당시 주룽지 총리가 한국을 방문하기 전 공식 채널외에 별도로 양국간 행정·교육·경제 지도자가 교류할 수 있는 단체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중국 측 파트너는 인민외교학회다. 현직 인사의 초청이나 교류는 외교부가 하지만 전직 인사와의 상대는 인민외교학회 소관이다.

중국과의 국교 수교이전 국회의원 신분일 때 북경 아시안게임 지원에 그가 보인 노력과 정성이 중국사람들의 신뢰를 받은 덕에 회장을 맡았다. 회장을 맡고 난 뒤 "할 일이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 우물을 팠다. 덕택에 지금은 중국에서 누구보다 신뢰하고 널리 알려진 한국 사람이 됐다.

그가 중국을 가는 횟수도 늘었지만 중국에서 찾아오는 이도 적잖다. 한국과의 교류를 위해 찾아오는 민간인도 많아졌다. 중국 진출을 위해 자문을 받으러 오는 중소기업인도 늘어났다. 사단법인인 협회는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다. 회원들의 회비와 중소기업인 등으로 구성된 준회원의 찬조로 살림을 꾸려간다. 사무실도 그가 개인 사무실로 쓰는 방에 마련돼 있다.

미국 유학생 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에게 편지를 보냈다. 유학생의 상당수가 고학으로 학비를 벌어야 하던 시절, 일본과 이스라엘 정부의 유학생 지원정책을 예로 들며 인재 양성에 국가가 신경을 써 달라고 부탁했다.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다. 대통령도 영부인도 만났다. 청와대서 만난 대통령은 낡고 닳은 혁띠를 매고 있었다. 대신 부강한 국가 건설에의 집념을 강렬하게 심어줬다.

5공화국 들어 홀트아동복지회 회장으로 공직을 시작했다. 그후 국회의원과 장관(총무처)을 거쳤다.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러시아 사회과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6대까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지만 정치에 다시 나설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은퇴할 생각도 없다. 중국과의 교류로 축적된 경험을 앞으로 10년정도는 더 활용하고 싶어한다. 그런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어디든 가서 선교사업을 할 생각이다.

집에서 저녁 뉴스를 보면서 30분간 자전거를 타는 게 체력관리의 비법이다. 대구 달서구 출신으로 지역구 의원도 했다. 얼마전에는 모교인 영남중·고 총동창회장을 맡았다. 명지대를 비롯한 몇몇 대학의 석좌교수도 맡았고 중국 몇몇 성(省)에선 경제고문으로 위촉받았다. "일하고 싶다"는 마음을 감추지 않는다.

서영관 논설위원seo123@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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