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역사·문화 이해 계기 됐다"
지난해 6월초, 학교 측으로부터 교환학생 선발에 합격했다는 통보를 받고 그때부터 들뜬 마음으로 이것 저것 생각하고, 준비하기 시작했다. 9월초 프랑스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지난해 9월 2일, 프랑스 드골공항에 발을 디뎠다. 너무 막막했다. 낯설고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는 곳에서 무엇부터 해야 할 지...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문화적, 관습의 차이였다. 어떤 일을 하든지 모든 일정을 사전통보 하고 시간과 장소를 미리 예약해야 했다.
기숙사방을 하나 얻으려 해도 미리 예약을 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아무리 사정이 딱해도 배정되지 않았다. 교수와의 면담은 물론이고, 교통편, 식사, 여행지 숙소 등 모든 것이 예약과 약속의 연속이었다.
새 학기가 시작하기까지 아직 한 달이나 남아있었던 나는 혼자서 외국생활에 적응하는 연습을 해야 했다. 매일 학교와 기숙사를 왔다 갔다 하며 낯선 느낌들을 조금씩 지워 나갔다. 그러면서 기숙사 친구들을 비롯해 유럽 각지에서 온 내 나이 또래의 학생들을 친구로 사귀게 되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생활하는 일 년 동안 내가 얻은 가장 큰 소득은 그들의 생활방식과 사고방식, 그리고 그들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피부로 느끼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피부색이 흰가 검은가, 어떤 말을 쓰나, 선진국 출신이냐 후진국 출신이냐 등등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우리 모두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젊은 대학생이라는 사실이 가장 중요했다.
미국이나 유럽 사람들은 철저히 개인주의적으로 생활한다는 것도 편견임을 알았다. 물론 개인별로 조금씩 차이는 있었지만, 대부분의 교환학생들은 서로의 차이를 충분히 이해하고 격이 없이 지내려고 노력했다. 심지어 우리 기숙사에서는 그릇과 나이프, 포크도 한 곳에 모아두고 내 것 네 것 구분 없이 같이 썼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수업방식과 어학실력 부족으로 학업을 따라가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 소규모 그룹수업이 많았고,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스스로 수업을 이끌어 나가지 않으면 남는 것이 없게 만드는 수업방식은 여러모로 부족했던 나가 적응하기에는 많은 노력과 시간을 필요로 했다.
지난 5월, 나는 1년만에 한국땅을 다시 밟았다. 돌이켜보니 프랑스에서 교환학생으로 생활했던 지난 일년은 내 평생 다시없을 소중한 시간이란 생각이 든다. 더 넓은 시각으로 보다 멀리 세상을 볼 수 있게 했고, 얼마나 다양한 역사와 문화, 사회가 존재하고 또 그 속에서 얼마나 다양한 삶의 형태들이 존재하는 지도 깨닫게 했다. 그리로 그 모든 것들이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임을 느끼게 했다.
송윤정(뒷줄 가운데·영남대 불어불문학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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