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밖' 사람들-봉화읍 유곡리 사그막골 '상투할배' 안영국 옹

입력 2005-07-23 09:08:14

봉화읍내에서 춘양면쪽으로 10여분쯤 가다보면 산 사이로 낡은 폐가와 허름한 농막(農幕) 서너 채가 눈에 들어온다. 읍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지만 번듯한 진입로조차 아직 없다. 마을을 에워싸고 있는 하천과 기찻길이 외부인의 접근을 가로막는다.

영동선 철길을 넘어 농로를 따라 걷기를 5분쯤. 아홉마리 용이 여의주를 놓고 다툰다는 '구룡쟁주(九龍爭珠)의 명당' 봉화읍 유곡리 사그막골(속칭 사동)이다.

평생을 고집으로 살아왔다는 '상투 할배' 안영국(85)씨의 집을 찾았다. 깔끔하게 정리된 세간살이가 집 주인의 성품을 대변하는 듯 하다. 집뜰 텃밭에는 고추와 깨, 토마토가 풍성하고 마루 뒤편 2평 남짓한 방에 걸린 갓과 두루마기, 망건이 이채롭다.

"할배! 뒷밭에 있어요." 할머니가 낯선 사람에 놀란 모습이다. 곧이어 칡덩굴을 치던 할아버지가 "우에 왔노. 뭐하러" 고함을 치며 등장한다.

할아버지는 나이답지않게 청춘이다. "세상사람들이 다 웃을텐데"라며 사진 촬영 부탁에 손사래를 치다가도 "그냥 하면 안된다"며 낫까지 집어들고 환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많이 해본(?) 듯한 솜씨다.

그도 그럴 것이 머리카락을 볶고 지지고 노랗거나 빨갛게 물들이는 세상에 상투 틀고 갓 쓰고 나서면 어이 눈길이 가지않을까.

"요즘은 장 보러 나가면 사람들이 사진 찍자고 해. 웃는 사람도 있고 이상하게 보는 사람도 있어. 얼마전 대구 갔을 땐 미국사람이 사진 찍자고 해서 찍어줬는데 한 장을 집으로 보내줬다니까, 글쎄."

할아버지가 그동안 계속 상투를 튼 것은 아니다. 살벌하던 일제의 단발령은 그도 거부하지 못했다.

"일본놈들 강제로 머리 자를 때 맹세했어. 망건아! 풍잠아! 너 잘 있거라, 더벅머리 길거든 또 보자고. 결국 그 약속은 지켰고 해방 후엔 한번도 자르지 않았지만 세월 지나면서 이젠 나 혼자 남은 것 같아."

한참을 하늘만 쳐다보던 할어버지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우리 것 지키기는 어려워도 잊어버리지는 말아야지. '편리'라는 두 글자가 세상을 망쳐. 불편하게 사는 것을 낙(樂)으로 생각해야 돼. 손발이 닳도록 일하고 사는 건 행복이야."

평생을 같이 한 김영희(71)할머니와 눈이 마주 쳤을까. 할아버지가 계면쩍은 듯 한마디 툭 던진다. "한평생 고집 피우며 살다보니 가족들에게 몹쓸 짓을 했어. 남에게 웃음거리도 되고 미움도 사고···"

할아버지의 회한 섞인 '독백'에 할머니가 맞장구를 친다.

"말도 마소. 내 고생한 것 하늘이 알까 땅이 알까. 시집와서 이 나이 되도록 할아버지 뒷바라지하며 집안살림 사느라 고생한 것 다 말하려면 책으로 써도 몇권은 써야할거야."

오랜만에 말동무를 만난 할머니의 하소연이 끊이지않는다. "공자왈 맹자왈해서 글 좋으면 뭐해. 아무 짝에도 써먹을 게 없는데. 철들자 망령이 나 되는 게 없다"며 혀를 내두른다.

그런데 다시 보니 할머니는 완전히 '아줌마 파마'다. 할아버지는 아직 19C 모습인데 할머니는 적어도 20C다. "요즘 비녀 꽂고 살라면 다 도망가지 누가 살아. 할아버지 고집 때문에 육십이 되도록 비녀 꽂고 살다 자식들 크고 나이 들면서 용기가 생겨 머리 짤랐지."

할아버지의 사진촬영이 시작되자 할머니가 하려면 제대로 하라며 망건과 갓, 두루마기, 손수건을 꺼내놓는다.

"30년 전 할아버지 망건 구하려 전국을 다 수소문했지만 못 구했어. 그러다 어느날 우연히 TV에 나오는 걸 보고 제주도에 전화해서 우편으로 구입했어. 말총으로 만든 거지. 풍잠은 진짠지 가짠지 모르지만···" 고생담을 늘어놓던 할머니가 갑자기 의기양양해진다.

망건에 달린 줄을 상투에 동여매던 할아버지는 "망건 쓰다 장 끝났다는 옛말도 있다"며 능숙한 솜씨를 뽐냈고 의복을 다 갖추니 영화나 TV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옛사람 모습 그대로였다.

할아버지는 충북 옥천 양반고을에서 태어나 하인도 거느리며 유세스럽게 컸다고 했다. 17살 때 돈 벌겠다고 집을 나와 서울로, 강원도로, 부산으로 돌아다니다 6.25전 이 곳에 들어왔다. 할머니와 사이에 5남2녀를 뒀지만 모두 객지에 산다.

"대가족으로 살려고 남의 전답까지 얻었는데 먹고 살기 힘드니까 영감 할망구만 남기고 모두 떠났어. 아파트로 오라고 하지만 내 마음대로 하지도 못하는데 싫어. 힘 닿는대로 농사짓다가 가면 그만이지." 서운한 듯 했다.

어느덧 사그막골에 어둠이 내리고 부엌에는 할머니가 저녁짓는 냄새가 구수하다. 집 앞을 지나는 기차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발걸음을 재촉한다.

"세상 상투가 다 잘려도 내 상투만은 남을게야." 꼬장꼬장한 할아버지의 배웅을 뒤로 하고 이젠 다시 세상 속으로 돌아갈 때다. 봉화.마경대기자 kdm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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