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42) 감독은 현재 초주검 상태다. 어느 스타 못지 않게 인터뷰 공세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시사회 날짜(18일)에 맞춰 간신히 영화를 완성한 상태에서 곧바로 '친절한 금자씨'의 '남자 주인공'으로서 쏟아지는 매스컴의 러브콜에 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19-20일 신라호텔 20층에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늦게까지 1시간마다 '손님'을 받고 있다. 스스로는 전작 '올드보이'에서 오대수가 '감금' 당했던 것과 같은 상황이라 느끼고 있을 정도. 영화의 주인공 이영애 보다도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이다.
칸 국제영화제가 인정한 이 바쁜 감독과 50분간 타이트한 대화를 나눴다.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기 직전 그는 잠깐 눈을 붙였다 일어난 상태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복수는 나의 것'이나 '올드보이' 보다 더 유머와 농담이 강해졌다.
▲그렇다. 앞의 두편은 좀 심각하지 않나. 긴장하고 봐야하는 영화이고 너무 심각해서 나부터가 보는데 힘이 드는 작품이었다. 그래서 '친절한 금자씨'의 경우는 끝에 가서 다시 심각해지는 시퀀스가 나오지만, 그래도 앞부분 상당히 긴 시간 동안 릴랙스한 기분으로 볼 수 있도록 했다.
--그러다보니 영화가 현실에 땅을 붙이고 있다는 느낌은 더욱 더 안든다.
▲현실에서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분위기가 좀 동화적이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 영화는 누구보다 이영애한테 친절한 영화 같다. 이영애의 배우로서의 갈증은 해소됐겠으나 반대로 감독은 많이 양보한 느낌이 든다.
▲글쎄…. 왜 그렇게 생각할까. 그러나 정사 장면이 없어서라면 이영애 때문에 없앤 것이 아니고 촬영하기 전날 내가 없앴다. 상상을 제한하는 것 같았다. 원래 그 장면은 아주 무표정하게 정사하는 금자씨의 표정을 잡으려고 했는데 그런 식으로 표현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또 애초에 15세 관람가 영화로 생각한 것도 크다. 물론 백선생 부부의 정사장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 부분에서도 신체노출은 없기 때문에 난 그런 것은 괜찮을 줄 알았다.(그럼에도 이 영화는 18세 관람가다) 이영애가 아니었다면 그 장면 뿐 아니라 영화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그랬다면 어떤 영화가 됐을 지는 모르겠다.
--쭉 남자를 주인공을 삼다가 이번에 여자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관객한테 또 여배우들한테 미안한 마음으로 이번에는 여자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기획한 영화지만 만드는 과정에서는 그것에 구애받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여자들 마음을 속속들이 알기도 힘들고, 여자도 천차만별이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여자의 시각으로, 여자의 입장에서 만들 수도 없다. 또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냥 주인공이 여자 이전에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만들었다. 또 너무 편리한 생각일 지 몰라도, 내가 어떻게 하든 이 영화는 이영애라는 여자 배우에 의해 여성적으로 표현될 것이라는 배짱도 있었다.
--금자는 왜 제빵 기술자인가.
▲유족들과 '거사'를 치른 후 금자가 그들에게 뭔가 대접하는 장면이 있기를 바랬다. 진심으로 뭔가 정성을 담아서 대접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렇다면 먹을거리가 가장 좋겠는데, 뭐를 사거나 배달하기 보다는 자기가 만드는 게 제일 좋았다.
그렇다고 찌개를 끓여먹거나 고기를 구워먹을 수는 없고, 그래도 케이크라는 것이 깔끔하고 디저트로 많이 먹는 것이니까 좋을 것 같았다. 또 금자가 항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여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여기서 케이크의 화려하고 예쁜 데코레이션도 어울릴 것이라 생각했다.
--금자의 영혼은 구원된 것인가. 영화는 해피엔딩인가.
▲주인공이 죽거나 다치지 않고 또 딸과 다시 만나서 끌어안았으니 겉으로 보기엔 해피엔딩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녀가 제니를 다시 호주로 돌려보내느냐 여부에 따라 앞으로의 행복이 달려 있을 것이다. 또 속죄의 방법으로 택했던 백선생의 처형이라는 것이 전혀 속죄의 기능을 하지 못했고 복수를 위해 쏟은 노력과 시간이 전부 무의미해진 상황이니까 그런 점에서는 해피엔딩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니까 결국 복수는 하지 말라는 얘기 아닌가.
▲물론이다. 하지 말아야 하는 것 보다 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그런다고 죽은 아이가 살아오는 게 아니니까 다 헛수고고 무의미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만큼 중요한 것은 복수에 대한 욕망이 존재하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코 앞에 범인이 무방비로 있고 내 손에 흉기가 있다면 복수를 어떻게 참을 수 있을까. 아무리 무의미한 일이라 하더라도 역시 사람이라는 것은 그런 무의미한 일에 뛰어드는 어두운 욕망을 갖고 있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복수하고 싶은 적이 있었나.
▲앞서 한 인터뷰에서 딱 한번 선배 한 사람이 있었다고 말했는데, 그 기사 나가고 엉뚱한 선배한테 전화가 왔다. "내가 너한테 언제 그랬냐"고 하더라. 그래서 "아니 선배가 아니고…"라며 수습해야했던 일이 있었다.(웃음)
--이번에도 제작비의 가장 많은 부분이 미술비에 투입됐나.
▲글쎄 이번에는 조연들이 많아서….(웃음) 이번에는 세트가 많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미술비가 많이 들지는 않았다. 대신 로케이션 촬영의 조잡하고 거친 느낌을 세트나 다름없이 표현하려고 조명 등에 신경을 많이 썼다.
--탁월한 유머 감각인데 따뜻한 영화에는 영 취미가 없나.
▲다음 작품이 그렇다.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사춘기 소녀가 그곳 환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그린다. 정신병원 하면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같은 작품만 생각하는데, 정신병원은 얼마든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고 무엇보다 치료를 위해 가는 곳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싶다. 밝고 코믹하고 로맨스도 있는 영화가 될 것이다. 오디션을 통해 10대 배우를 선발할 것 같다. 25억원짜리 HD영화이고 연내로 촬영 시작하는 게 목표다.
--배우만 지분을 가져가는 게 아니다. 영화계 스타파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그는 '올드보이'와 '친절한 금자씨'의 제작 지분을 갖고 있다)
▲사실 그런 문제 잘 모른다. 제작사를 차리긴 했지만 난 회사 운영에 전혀 관여를 안 하고 영화 예산도 내가 결재를 안 한다. 그런 것 하기 싫어 대표도 따로 둔 것이고….
확실한 것은 이런 문제에서는 내가 바보라는 것이다. 다만 얼마전 '사건'이 터지자 최민식 송강호 두 사람이 굉장히 처절하게 괴로워하는 모습은 옆에서 봤다. 무리하게 가져가는 사람도 있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최민식 송강호는 한만큼 가져간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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