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않은 일이었다. 지척에 보이는 섬인데 가는 길은 험난하기만 했다. 먹을 물도 부족하고 밥해 줄 사람도 없다며 고사하는 섬 주인장을 겨우 설득하자 이번에는 궂은 날씨가 발목을 붙잡는다.
지난 5일 오전 8시. 장마철이라 늘상 찌푸리던 날씨가 잠시 갠 틈을 타 죽도로 떠나기로 했다. 돼지고기 5근, 소주 5병, 물 2ℓ, 도시락 3개, 침낭을 준비해 울릉도 도동항을 찾았다.
하지만 울릉도와 죽도를 오가는 도선 '우성훼리호'(54t)를 탈 수는 없었다. 정원 194명인 배에 달랑 한 명만 태우고서는 운항을 못한다는 것. 이해는 됐지만 포기할 수는 없다. 취재차 꼭 가야한다고 거듭 당부하자 도선을 운영하는 양병환씨가 4인승 고무보트를 주선해줬다. 배 삯은 휘발유 한 말.
'이젠 출발이구나'하는 안도감도 잠시. 항구를 벗어나자마자 높은 파도가 뱃전을 때리더니 결국 바다 한가운데에서 보트가 멈춰섰다. 어! 어! 하는 사이 보트 바닥이 온통 바닷물 천지다. 보트를 운전하는 석지태씨와 함께 절박한 손놀림으로 바닷물을 퍼내고 겨우 시동을 다시 걸었다.
울릉도에서 겨우 7km 떨어진 죽도에는 출발한 지 거의 한 시간 만에 도착했다. 2m 높이의 죽도 접안시설 위로 기어오르느라 무릎은 다 까졌다. 아무도 없는 접안시설 위에서 속옷까지 모두 벗어 바닷물을 짜는 모습이 스스로 생각해도 영락없는 '로빈슨 크루소우'다.
'파도 위에 떠 있는 작은 숲' 죽도는 '부자(父子)의 섬'이다. 주민이래야 40여 년 전 우연히 이곳에 들어와 터줏대감이 된 김길철(66)씨와 아들 유곤(37)씨뿐이다. 김씨의 부인은 지난 2002년 3월 산나물을 캐던 중 그만 발을 헛디뎌 고인이 됐다.
깎아지른 듯한 수직절벽 사이로 난 365개 나선형 돌계단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올라가니 해발 90m 지점부터는 병풍처럼 둘러쳐진 울창한 대나무숲과 널찍한 평원이 이어진다. 곧이어 김씨가 10여 년 전에 장만한 하얀 양옥집이 나타나고 흰 풍산개 한 마리가 낯선 객을 반긴다.
마침 중참을 먹고 밭일을 나가는 김씨와 아들 유곤씨를 만났다. 아들 유곤씨는 불청객이 영 반갑지 않다는 표정이다."여서 우째 지낼라 카노. 배도 없는데 우에 왔노." 물에 빠진 몰골이 불쌍하다는 듯 김씨가 아래위를 훑어보며 인사를 건넸다.
얼른 배낭을 벗어두고 김씨 부자를 뛰따라 나섰다. 더덕농사용 퇴비를 만들기 위해 풀을 베고 경운기가 다니는 길을 보수하다 이들 부자를 도우며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박수생(67·울산시)씨를 만났다.
박씨는 농사일이 없는 겨울철이면 석달쯤 울산에 있는 아들집에서 생활하다 철새처럼 죽도로 다시 돌아오기를 수년째 하고 있다. 틈틈이 말을 걸어도 한마디 대꾸도 없이 분주하기만 한 그에게 무슨 사연이 있는지 무척이나 궁금했지만 끝내 알 순 없었다.
경운기에 풀을 한 가득 싣고 점심을 먹기 위해 집으로 돌아왔다. '선물'로 마련해간 삼겹살과 소주를 꺼냈지만 유곤씨는 아직도 마뜩지 않은 듯하다. 집 구경을 하다 '울릉도 섬더덕 인기몰이'란 기사를 확대복사해 걸어둔 게 눈에 띄었다. 1999년 6월 7일자 매일신문이었다. "더덕 판매에 도움이 돼 농산물 판매장에 수년째 걸어놓고 있다"는 김씨의 말에 용기를 내 기자가 쓴 글이라고 털어놓자 김씨의 얼굴이 더욱 밝아졌다. 점심상을 차리던 유곤씨까지 달려와 이름을 재차 확인한 뒤에서야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대화가 이어졌다.
오후에는 혼자 섬을 한 바퀴 돌았다. 섬 둘레를 따라 도는 산책로는 약 4㎞. 김씨 부자가 경작하는 1만여 평의 더덕농장에는 황금색 햇순이 보기좋게 자라고 있었다. 이곳 더덕의 특징은 들풀로 퇴비를 만들어 사용한 덕분에 심이 없어 부드럽고 1년간 자연상태로 저장을 해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
김씨 부자는 당연히(?) 먹을 채소 또한 직접 가꾼다. 요즘은 수박과 무공해 토마토를 키우느라, 더덕밭 김 메기와 퇴비를 만드느라 긴 여름 해가 짧기만 하다.
"섬에서 하는 농사일만큼 열심히 하면 어디에서도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유곤씨는 어머니의 빈자리를 채우며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살림꾼이다. 빨래에 삼시 세끼 진지상을 차려내는 건 기본. 7남매의 맏이로 이곳에서 태어난 그는 학교와 군대시절만 섬 바깥에서 보냈을 뿐 줄곧 아버지를 모시고 있다.
"빗물을 받아 쓰고 전기도 자가발전인 탓에 넉넉지 않아 불편하죠. 하지만 40년간 섬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떠날 수가 없어요. 물론 가끔은 한밤중에 깨어 섬을 떠나는 생각도 하긴 하지만요."
김씨는 섬 생활 때문에 아직 결혼을 못한 노총각 아들의 중매 얘기에 맞장구를 치면서도 "섬 생활을 이해해줄 배우자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며 말꼬리를 흐렸다.요즘은 기름값이 너무 올라 섬의 자가발전기를 오래 돌릴 수가 없단다. 그래서 해가 지기 전에 저녁식사를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고 김씨가 귀띔한다.
그러나 '섬더덕 기사' 덕분일까? 오늘만큼은 특별대우다. 전기불빛 아래서 느긋하게 대화를 나누며 밤 10시쯤 발전기 가동을 중단했다. 이내 칠흙같은 밤이 깊어갔다.
다음날 오전 10시. 이틀 만에 관광객 30여 명을 태우고 들어온 도선을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틀 동안 빗물 두 바가지로 세수하고 머리 감고 양치질 한 번 하고 간다"고 너스레를 떨자 김씨가 "물을 너무 많이 사용했다"며 농으로 되받는다.비록 뭍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섬에서 인사할 이웃조차 없이 살고 있지만 서로에게 등대가 되어주는 부자가 있기에 죽도는 외롭지 않아 보였다.
울릉·허영국기자 huhyk@imaeil.com
사진: 무공해 더덕밭을 손질하는 아바지 김길철씨와 아들 유곤씨 뒤쪽으로 울릉도의 아름다은 풍광이 보인다.
◇ 죽도는 울릉군 북면(北面)에 속한 부속 섬(해발 106m)으로 독도를 비롯한 울릉도 부속섬 106개(유인도 3개 포함) 중 가장 크다. 관리는 울릉군에서 하지만 소유자는 산림청이다.
전체 면적은 6만2천여평에 섬 직선 남북간 거리는 730m, 동서쪽 폭은 400m로 미국 원자력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 길이보다 두 배 조금 넘는다. 울릉도 저동항에서 북동쪽 4㎞, 도동항에서 7㎞ 떨어져 있다.
주민은 40여년 전 4가구 30여명에 이르렀지만 지하수가 없어 빗물을 모아 식수와 생활용수를 해결해야 하는 불편때문에 대부분 뭍으로 이주했다. 1997년부터 김길철씨와 아들 유곤씨 1가구가 남아 농사를 짓고 있다.수직에 가까운 절벽 위에 펼쳐진 평원에는 대나무가 많이 자생해 대섬이라고도 불리며 섬 둘레를 따라 만들어진 산책로 주변에는 후박나무 군락지와 절경이 이어진다.
1993년 민자유치 4억8천만 원 등 30억 원의 예산으로 선착장을 확장하고 유일한 진입로인 나선형 계단을 개설하는 등 관광개발사업으로 연중 2천∼3천 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야영장과 피크닉장도 갖추고 있다. 특산물은 더덕과 수박. 배편은 도동항에서 하루 3차례, 20분이 소요되지만 관광비수기엔 이용객이 없어 외부인 발길이 뚝 끊긴다. 때문에 관광객을 상대로 한 더덕농사도 여의치 않지만 마치 떼돈이나 버는 것처럼 부풀려져 있어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울릉·허영국기자 huhy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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