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 북군동 이상호씨 집

입력 2005-07-14 18:25:31

나지막한 초가지붕 아래 깜깜한 방 안. 부싯돌 부딪는 소리와 함께 손톱만 한 불이 등잔 위로 내려앉는다. 이내 방안에 퍼지는 희미한 빛 속에서 하나 둘씩 떠오르는 가족들의 얼굴. 전깃불이 없었던 그때 그 시절은 모두 그랬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세상을 밝히는 등잔은 해만 떨어지면 없어서는 안 될 밤 필수품이었던 것.

경주시 북군동에 사는 이상호(48)씨 가족은 수천 명이 넘는다. 15년 동안 전국을 돌며 모은 1천여 개의 옛날 등잔이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다. 목(木)등잔, 철제 등잔, 동(銅)등잔, 사기 등잔에서부터 무쇠촛대와 등가(燈架)까지. 여러 시대를 살았던 다양한 등잔들이 한데 모여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씨의 집은 '등잔초가집'으로 불린다.

"등잔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있으면 모두 제각각인 모양새에도 감탄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지요. 이 등잔을 사용했을 옛사람들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불 밑에 옹기종기 모여서 아버지는 책 읽고, 할머니는 손자에게 얘기해주고, 어머니는 바느질하는 모습을 상상해 봐요. 얼마나 따뜻한 풍경인가. 간혹 이 불 밑에서 벌어졌을 조금 야한 부부생활도 떠오르고요."

이씨가 경주 소금강국립공원이 훤히 내다보이는 이곳에 눌러앉은 것은 지난 1990년. 산세도 좋고, 앞에 물이 흐르는 주위의 자연환경에 반했단다. 그래서 300년을 살았다는 감나무 뒤에 황토로 만든 초가집을 지었다. 23평 남짓한 공간에 거실과 방 2개, 화장실이 들어선 아담한 집.

이씨의 집에는 옛것을 소중히 여기는 집주인의 생각이 넘쳐난다. 창에 달아놓은 마차 바퀴, 현관 옆 연자방아, 다듬잇돌과 맷돌로 만든 축대, 정원 한편에 모아놓은 수차, 절구통, 디딜방아, 씨아, 베틀 등…. 등잔초가집을 이루는 소품들은 모두 골동품이다.

집 안도 밖에서 본 풍경과 다를 바가 없다. 집에 들어서니 꼭 100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한 느낌이랄까. 대들보 위의 쟁기를 시작으로 집 안에도 우리 조상들이 썼던 각종 민속품들 천지다. 또 중앙에 구멍을 낸 벌통을 황토벽에 박아 집의 바람구멍으로 이용하거나, 이씨가 직접 만든 나무 싱크대는 무척 재미난 풍경이다.

한때 농기구 판매업을 했던 이씨인 만큼 집을 꾸미는데 든 비용은 무척 저렴했을 터이다. "어떤 집을 짓고, 어떻게 꾸밀 것인지 확고한 생각과 아이디어만 풍부하다면 부담은 크지 않습니다. 무조건 크고 웅장하고 아름다운 집을 지어야 한다는 대부분 사람의 생각이 부담을 키우는 것뿐이지요."

'전원주택은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무색하게 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씨도 최근엔 부담이 늘었다. 가족이 점점 늘고 있기 때문이다.

"등잔이 자꾸 모이면서 모아놓을 공간이 필요하게 됐지요. 그래서 별채 지을 땅을 조금 더 사게 되고, 그러다 아예 등잔박물관을 열자는 생각에 땅을 자꾸 넓히게 됐지요. 200평에서 시작한 땅이 지금은 1천 평이 된 이유입니다."

박물관이 들어설 공간은 현재 수많은 종류의 나무와 야생화들이 잠시 빌려쓰는 대정원이 됐다. 이씨는 3년 후에 등잔박물관을 개관한다는 계획을 세웠단다.

"세상을 밝히는 등잔은 무척 희망적인 이미지의 물건이지요. 어둠을 환하게 밝혀주는 등잔을 통해 요즘처럼 힘든 시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이 봄눈 녹듯 사르르 평안해졌으면 합니다."

이씨는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사람 사이의 정을 등잔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등잔초가집을 다녀온 날 저녁, 가로등 불빛이 화려하게 장식된 신천대로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수줍게 떨리는 등잔불의 은은함이 왠지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사진·박순국편집위원 tokyo@imaeil.com

◇ 정용의 500자평

우리 국민에게 '노후에 살고 싶은 곳이 어디냐'는 설문조사에서 매년 가장 살고 싶은 곳으로 경주가 꼽힌다고 한다. 평온한 지형에 신라 천년의 고도의 고풍스러움이 정겹고, 반월성'계림'안압지를 마음 놓고 걸을 수 있다는 마음인 듯하다. 친한 벗들이 오면 남산에도 오르고 보문관광단지에서 휴식도 즐기고, 경북의 반 정도의 골프장이 경주에 있음 또한 좋은 점일 듯하다.

필자도 늘 마음이 가는 곳이다. 이런 점들을 생각하고 시내에서 보문호 물천리 쪽으로 오르는 자리에 노후를 보낼 집터를 잡았다. 집터 중앙에 있는 한 그루 감나무가 예사롭지 않은데 넓은 경주 중에도 북군동 이곳에 자리 잡은 큰 이유란다.

이상호씨는 장구, 판소리, 대금 연주도 수준급이고 골동품 보는 눈이 보통이 넘는 등 우리 것에 온통 빠져 산다. 15년 전부터 농기계 판매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농가의 민속품을 가까이하면서 우리 것의 소중함과 깊이를 알았단다. 그의 집에는 수많은 민속품이 있고 특히나 등잔이 족히 1천여 점은 될 것 같다.

"신라의 금관 만든 후손들이 등잔을 만들었고 거기에 불을 밝혔습니다. 모든 모양이 다르듯이 '등불 밑에 무슨 일이 있을까?' 상상을 해보면 재미있습니다."

100년 전으로 옮겨가서 생각해보면 이 아름다운 등잔 밑에서 "아기를 달래다 같이 졸고 있는 어머니 옆에 있었을 등잔, 남편을 기다리며 같이 했던 등잔, 삯바느질을 할 때 불을 밝혀 준 등잔, 신혼방의 황홀등, 우리 조상의 수많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습니다."

황토로 아름답게 집을 짓고 집 안팎으로는 민속품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으며 늘꽃들이 울안을 밝은 분위기를 만들고 있는 이씨 집은 진정 참 멋을 아는 한국인 내외가 살고 있는 테마가 있는 집이다.

이런 테마가 없다면 집의 아름다움은 크게 줄었을 것이다. 부인이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해서 많이 도움이 된다는 이씨는 지금의 터에 등잔 박물관을 지어 희망의 불을 밝힌 조상의 등잔을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지금도 아름다운 집인데 더욱 아름다운 집을 짓는 꿈이 속히 이루어지길 애독자들과 빌어본다.

*아름다운 집에서 향기롭게 사는 사람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연락하실 번호는 053)251-1583입니다.

사진: 1.집앞 감나무가 예사롭지 않은 이상호씨의 황토집 2. 마차바퀴 창문이 이색적인 거실의 풍경 3. 별채에 따로 살고 있는 1천여 점의 옛날 등잔들. 이 집이 '등잔초가집'이 된 배경이다 4. 등잔박물관이 자리할 공간에는 나무와 꽃들이 잠시 빌려쓰는 정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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