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분 간격으로 쉴 새 없이 집이 흔들립니다. 기차가 지나가면 상대편 전화 목소리는 아예 들리지도 않죠. 텔레비전은 지지직거리고 화면이 흔들립니다. 집안 곳곳은 금이 가고 갈라졌습니다. 여길 팔아도 변변한 전셋집 하나 마련할 수 없습니다. 정말 더는 못 참겠습니다."
철로변은 대구 도심의 대표적 낙후지역이다.
△현장
11일 오후 대구 서구 원대동1가. 경부선 철도가 통과하는 이곳은 15분 간격으로 KTX, 새마을호, 무궁화호가 소음방지막을 뚫고 굉음을 뿜어댔다.
"여기 사람은 대부분 귀가 나쁩니다. 20년 넘게 살아선지 텔레비전 음량도 최고로 높여놓지 않으면 도통 무슨 소린지 모를 정돕니다."
1977년 이곳으로 이사왔다는 곽재준(65)씨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철로변 주변에 학교가 어디 있습니까? 저쪽 동네로 가려면 육교를 건너야 하고, 밤만 되면 불량배들이 나와 시끄럽게 떠들고 돌 던지고. 완전 우범지대가 됐어요. 살인사건도 발생했다니까요."
인근 동네를 가리키며 곽씨가 얘기를 이었다.
김말자(54·여)씨는 "우리 집은 근저당도 없고 깨끗한 40평 부지인데 은행대출을 받으러 갔더니 400만 원 준다고 하더군요. 땅값이 너무 싸서 돈을 많이 줄 수 없다대요."
하나둘 모여든 주민들의 한탄이 쏟아졌다. 한 주민은 "원대동과 북구 고성동 사이 굴다리 주변은 완전 쓰레기매립장인데다 비만 오면 돌을 놓고 다녀야 할 정도로 더러운 빗물에 잠긴다"며 "철로변에 산다는 고통은 말로 다 못한다"고 했다.△떨어지는 땅값, 늘어가는 한숨"우리 집은 딱 40평입니다. 10년 전만 해도 1억4천만 원 정도는 받을 수 있었는데 요즘은 5천~6천만 원이 매매가격이에요. 하루가 다르게 땅값이 오른다는데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 있습니까?"
서구 원대동1가 299(건설교통부 공시지가 산정 표준지)에 살고 있는 도옥순(70·여)씨는 "이제 이사하기는 글렀다"고 했다. 10년 전에 비해 집값이 2배 이상 떨어져 요즘 뜨고 있는 수성구, 달서구에서는 20평 전셋집 얻기도 힘들다는 것.
주민들은 최근 해당 구청에 '개별공시지가를 올려달라'는 집단민원을 제기했다. 서구 원대동1가 299번지(표준지)의 개별공시지가는 1992년 1㎡당 60만 원이었다가 1999년 38만 원으로 떨어졌고 지난 3월 서구청이 발표한 개별공시지가는 41만 원이었다. 이곳은 1999년부터 지난해(6년 간)까지 공시지가가 38만 원이었으나 올해에는 도씨가 건설교통부에 '이의신청'을 제기, 3만 원이 올랐다.
주민들은 공시지가 산정에 불만이 크다.
이수경(33·여)씨는 정부를 성토했다. "주민들이 표준공시지가, 개별공시지가라는 제도 같은 것 잘 모르잖아요. 하도 답답해서 건교부에 직접 이의신청했더니 뒤늦게 올려주더군요. 정말 한심합니다. 민원을 제기하면 바뀌고 가만 있으면 맨날 똑같고…."
서구 원대동 개별지가 산정을 담당하는 ㅈ감정평가법인 권영태(58) 평가사는 "건교부의 표준공시지가 산출 프로그램에는 화장장, 방폐장, 비행장 주변, 철로변 등 토지가격을 책정하는데 대한 저해요인을 두고 계산하고 있다"고 했다.
서구청 지적과 관계자는 "개별공시지가는 표준공시지가 산출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데 주민들이 제도를 모르고 민원을 제기한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이렇게 절규하고 있다. "우리가 처음부터 못 살았던 게 아닙니다. 철로 때문에 못 살게 됐지요." 서상현기자 ssang@imaeil.com
사진:철로변 사람들은 쉴 새 없이 지나다니는 열차의 소음공해에 시달리는 것만 해도 억울한데다 땅값마저 떨어져 시름이 깊다. 이상철기자 finde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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