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말시험을 마치고

입력 2005-07-12 10:19:14

기말시험이 끝난 시점에서 많은 학생들이 심한 허탈감에 빠져 있다. 죽고 싶다는 말로 고통을 호소하는 메일을 보내오고 있다. 그런 학생들에게 '통과의례'란 말로 궁색하게 위로해 보려고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시험은 전 세계 모든 학생들이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니 슬기롭게 극복하라고 말이다. 그러나 뒷맛이 개운치가 않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향의 세계와 목전에 전개되는 현실이 일치되지 않는 상태를 A.까뮈는 '부조리'라고 부른다. 그는 이와 같은 부조리는 인간의 숙명이기 때문에 도피하려 해 보아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한다. 부조리한 현실을 끌어안고 용감하게 그것과 맞대결 하는 것만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까뮈가 "나는 반항한다. 고로 나는 존재 한다"라고 말할 때, 그 '반항'은 부조리한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그것과 정면으로 부딪히는 적극적이고도 도전적인 삶을 의미한다.

그러나 용감히 맞선다고 부조리한 현실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시련이 다 성장의 자양분이 되는 것도 아니다. 참고 견딜 수 있는 시련이라야 보약이 될 수 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처한 현실은 때로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힘겹다. 한 학기가 끝나가고 방학이 다가와도 그들은 별로 즐겁지 않다. 내일이면 또 다른 빡빡한 일정들이 그들을 이리저리로 몰아붙일 것이기 때문이다. 방학이 다가오고 있다. 현실이 아무리 각박하다 할지라도 지금부터 미리 생각하고 준비하여 그들의 숨통을 좀 열어 주자. 어른들은 엊그제처럼 느껴지는 옛날을 생각해 보자.

지금 어른들의 학창시절은 여유가 있었다. 방학은 그 여유로움의 절정이었다. 방학이 시작되는 날부터 잠 뿌리를 뽑기 위해 3박4일 동안 내내 자기만 하는 때도 있었다. 이를 참다못한 어머니는 어느 날 해거름에 낮잠 자는 아이를 향해 다급한 목소리로 "너, 빨리 일어나 학교 안 갈 거니?"라며 고함을 지른다. 놀란 아이는 벌떡 일어나 가방을 들고 집밖으로 부리나케 뛰쳐나간다. 골목 끝까지 죽도록 달리다가 뭔가 이상하여 주변을 살펴본다. 아침이 아니라 저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멀리 서산에는 하늘이 온통 붉게 물들어 있다. 속았다는 기분에 억울해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종일 잠만 잔 행위를 머쓱해 하며 집으로 들어간다. 온 가족이 박수를 치며 웃는다. 자는 아이나 꾸중하는 어른이나 모두 이렇게 여유가 있었다.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어른 아이 모두에게 꼭 필요한 것이 두 가지 있다. 땀과 감동이 바로 그것이다. 땀에는 신체적인 활동과 공부가 포함된다. 그러나 몸과 두뇌의 땀은 가슴을 뜨겁게 해 주는 감동과 함께 할 때보다 생산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다. 감동은 육체와 정신의 피로를 잊게 해주며 몸과 마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다. 우리의 현실에서 땀과 감동이 적절한 비율로 조화를 이루게 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그 불균형이 인내의 한도를 넘어설 때는 회복불능의 치명상을 입게 된다.

여름은 태양과 무성한 잎의 계절이다. 젊음의 계절이다. 어느 작가는 "청춘이란 부단히 취하는 마음이다. 즉 이성의 열병이다"라고 했다. 기말시험이 끝난 지금은 학생과 학부모 모두에게 다소 여유가 있는 시기이다. 우리는 정말로 전쟁을 연상하게 할 만큼 정신없이 한 학기를 보냈다. 다소 미흡하더라도 지나온 날들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자. 억지로라도 시간을 내어 여행도 하고 읽고 싶은 책도 읽으며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자.

윤일현(송원학원진학지도실장.ihny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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