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밖' 사람들-경북 청송 부동면 내원마을

입력 2005-07-09 08:39:08

4일 밤 8시. 억수같이 퍼붓던 장대비가 잠시 멈춘 주왕산. 계곡 골골을 부딪고 지나가는 와류가 온 산을 요동치게 한다. 딱히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물소리, 굉음이지만 싫지 않다. 아니 그 물소리에 빠져 든다. 일상의 찌든 때를 벗고 물길 따라 흘러 흐르다 때론 포말로 부서져 허공을 박차 날아 보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게다.

주왕산 제2폭포를 지났다. 칠흙 같은 어둠을 손전등으로 가르고 내원마을을 향해 걷는다. 어둠이 익숙해 지는가 싶었는데 헛 것을 본 탓일까? 깨알만한 색동불빛 몇 몇 개가 허공을 떠돌며 깜빡이다 사라지는 모습이 스쳐간다. 반딧불이었다. 자세히 보니 한 두 마리 아니다. 등산로 주변과 숲속, 개울가에서도 군무를 한다. 어둠이 깊어 연초록의 광채는 더욱 영롱했다. 유성우도 이 만큼 아름답지 못할 터.

기분이 너무 좋아서인가 간간히 채이는 돌부리도 정겹다. 제3폭포를 지난지 10 여분 만에 다다른 내원마을. 등산로를 따라 9가구가 있다. 순서대로 내원산방, 고사리댁, 반장댁, 본동댁, 억만할배댁, 정도사댁으로 이어진다. 택호와 별명을 따다 붙인 정감 넘치는 이름. 비록 낡은 함석지붕 흙집이지만.

그런데 마을에 인기척이라곤 없다. 밤 9시가 조금 지났을 뿐인데.... 알고 보니 다음날 5일장을 보러 해지기 전 일찌감치 청송읍내로 함께 내려갔던 것이다. 영문 모르고 집집마다 문을 두드렸으니 허사일 수 밖에. 노숙을 하려다 그래도 한번만 더 사람을 찾아보자 작심 하고 반장집 문을 쾅쾅 쳤다. 역시 반응이 없어 돌아서려는데 떨걱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안채에서 나오는 사람은 내원마을 반장댁 최영기(67) 할머니다. "아이구, 이 밤에 누구로?" 반 백의 머리에 허름한 옷차림. 단번에 고생에 찌든 산골 동네사람 표시가 났지만 표정과 눈망울은 더없이 해맑았다. 하루밤 묵으려 한다니 잠깐 기다리란다. 늦은 저녁을 먹던 참이었던 것. 전기가 들어 오지 않는 곳이라 밥상 머리에 촛불을 밝혀 놓았다. 촛대 삼아 양초를 꽂은 우그러진 양은 주전자 속에 촛농이 넘칠 듯 가득 차 있다.

반찬이라야 삶은 풋 배추와 산채, 고추장, 눅눅해진 김 몇 조각이 전부. "산중이라 별 반찬 없니더, 그래도 내 손으로 장만한 거라 평생 먹어도 질리지 않구만요"

반장댁은 이 마을 평생 토박이다. 19살 때 산판일하고 버섯도 따던 청송군 안덕면 도평마을 출신 김희걸(75) 할아버지와 중매로 결혼한 이후 5남매를 출가시킨 지금까지 한번도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평생토록 목욕탕을 딱 한번 가 보았다. 몇년 전 둘째 아들 혼사를 앞두고서다. 옷 벗기가 민망해 속옷을 입은 채 탕안에 들어갔다 웃음바다를 만들었다는 것. 미장원은 1년에 한번 가면 많이 가는 것이라고 한다.

4대째 마을에서 살았다는 반장댁은 한때 마을에는 70가구에 500여명이 있었으나 6.25 전란과 70년대 새마을사업 때 정부의 소개(疏開)정책으로 30년 전 쯤부터는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 나갔다고 했다.

반장댁은 6년 전부터 기력이 달려 농삿일을 접고 등산객들에게 밥을 지어주거나 음로수를 파는 수입으로 살고 있다. 반장댁 이야기를 듣다 보니 벌써 새벽 4시다. 반장댁이 내어준 잠자리는 50여년 된 흙벽집. 금방 골아떨어졌다. 단잠이다. 산새 소리에 잠을 깨 밖으로 나가 비로소 둘러본 내원마을은 산중 분지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넓었다. 묵 밭에는 이름 모를 들꽃이 흐드러졌고 주변 산자락은 노송 천지였다.

비온 뒤 솔 내음이 진동한다. 개울물은 또 어찌나 맑은지, 정신까지 맑아진다. 사람들이 기를 쓰고 이곳을 찾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어림잡아도 1년에 5만명 넘는 사람이 들린다고.

아침 9시가 조금 넘어서부터 읍내로 갔던 마을 사람들이 한 둘씩 돌아왔다. 고사리댁(62). 대구에서 섬유공장을 하다 은퇴한 남편(70)을 따라 8년 전 이곳에 와 정착했다. "20여년 전 우연히 이곳을 찾았다 산세와 마을사람 인심에 반한 남편이 자식들 출가 시키고 만년에는 꼭 이곳에서 살겠다고 입버릇처럼 얘기 했는데 정말 그렇게 됐네요. 산중생활이 힘들기도 하지만 만족하니 너무 행복해요"

내원마을 사슴할아버지로 유명한 권영도(70)씨도 공직생활을 하다 30여년 전 산이 좋아 무작정 이곳 산사람이 됐다. 생계를 위해 등산안내를 하다 알게 돼 짝지어 준 처녀, 총각이 무릇 50쌍이다.

역시 30여년 전 건축업을 접은 남편(95년 작고)을 따라 온 예천댁 최봉연(81)할머니. 10년 전 청송읍내에서 생활 터전을 옮겨 온 내원산방의 이상해(46)씨. 언제나 마을입구에서 산채를 파는, 내원마을 50년 지킴이 본동 할머니(79).

토박이와 이방인, 각양각생의 인생길을 걸어온 이들이지만 아우러져 사는 모습이 가족같다. 순리를 따르고 자연에 순응하며 산골 사람의 본심대로, 또 그 본심을 배워 살아가기 때문이다. 서로를 형님 아우로 부르고 위해준다. 늙어 힘없는 탓에 농사 접고 장사 해서 생활하지만 후하기 이를 데 없다. 음식을 거져 주기도 하고 가격을 매기지 않고 주는 대로 받기도 한다. 그런데 그 장사가 화근이 됐다.

무허가 불법영업이고 주왕산국립공원을 오염 시키는 주범으로 몰려 철거대상이 된 것. 관리사무소는 지난해 장사하는 주민 전부를 고발, 이상해씨는 구속 됐고 나머지는 수백만원의 벌금이 부과됐다.

나아가 청송군과 공원관리사무소는 취락지역이던 마을을 환경보존지역으로 묶어 사람이 아예 못 살게 했다. 5,6년전 부터 계속된 집요한 퇴거 압박에 주민들은 결국은 손을 들었다. 지난 5월 반장댁과 고사리댁, 예천할머니 등 5가구가 관리사무소의 철거(이주)계획에 동의하고 보상금을 받아 이달 말이면 이 곳을 떠나냐 한다. 나머지 4가구도 버티고 있지만 결국 떠나야할 처지다.

"관리사무소는 우리 마을을 눈엣가시처럼 여겼지. 산을 오염을 시킨다나. 불편해서 사람이 살지 못 하도록 전기도 못 들어오게 막았지. 우리를 쫒을 궁리만 했어" 마을 사람들의 울분은 컸다.

평생 산중에 살다 바깥 세상으로 가야하니 기가 막힌다는 반장댁. 다른 주민들의 심정도 별 다를 바 없다. 전기없는 내원마을과 주민들은 이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하산길 발걸음이 되레 무겁다. 정경구기자 jkgoo@imaeil.com 김경돈기자 kd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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