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엑스포 숲 '생태공원' 됐네

입력 2005-07-08 10:50:10

경주 보문단지를 지나 불국사로 가는 길 옆으로 골프장 조성공사가 한창이다. 하지만 이 일대에 살던 동물들에게 골프장은 졸지에 수십만 평 보금자리를 빼앗고 주요 이동통로를 봉쇄했다. 공사가 시작된 지 1년여. 이곳 동물들은 인근에 새 보금자리를 틀었다. 골프장 쪽에서 피난온 동물들이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으로 찾아들면서 10만여 평에 달하는 엑스포 숲이 자연생태공원으로 바뀌고 있다.

◇고라니·부엉이·담비…피난처가 생태공원으로

7일 새벽 5시 30분쯤 엑스포 단지 내 야외조각공원 잔디밭. 100m 전방에 가물가물 보이는 것은 새끼 두 마리와 함께 산책 나온 다섯 마리의 고라니 가족이었다. 그러나 인기척이 나기 무섭게 자취를 감췄다.

공원 정상부로 올라 가는 길에선 네 마리의 새끼를 동반한 꿩 한 쌍을 만났다. 이놈들 역시 사람 숨소리만 듣고도 쏜살같이 숲속으로 달아났다. 한 번 보금자리를 잃어본 기억이 되살아난 탓일까.

이들 외에 6, 7일 이틀간 이곳에서 만난 야생조수는 산토끼, 꿩, 텃새로 변한 청둥오리 등 10여 종. 순간순간 머리를 돌려가며 주변을 경계하면서도 살구 한 알을 순식간에 먹어치우는 담비도 보였다. 5개의 알을 가슴에 품고 있는 새는 개개비나 오목눈이로 추정되고, 조각공원 입구에 있는 나무 몸통에 생긴 구멍에 알을 낳고 부화한 새끼를 안고 있는 부엉이는 고개를 빼곡히 내민 자세가 마치 야간 초병 같았다. 엑스포단지 시설조경팀 류희균(52)씨는 "녹색이 짙어지는 만큼 동물들도 늘어난다"며 "하룻밤 지나고 나면 새끼 몇 마리가 늘어난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엑스포공원으로 오기까지

공원 조성 10년이 다 되어가지만 전에 없던 동물들이 부쩍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봄부터. 바로 옆에 27홀짜리 골프장 공사가 본궤도에 오른 것과 비슷한 시점이다.

엑스포공원의 약도를 펴놓고 보면 현재 이곳은 고립된 형상이다. 북쪽으로는 왕복 6∼8차로 도로에 막혔고 서쪽은 천군동 민가와 논, 남쪽으로는 민둥산과 임도 및 논이 가로막고 있다. 유일한 통로는 불국사 쪽으로 가는 동쪽 산. 그러나 이마저도 골프장이 들어서면서 차단돼 버렸다.

그러나 엑스포 공원은 올 들어서만 살구·매실·다래 등 유실수를 포함한 20여 종의 나무 3천여 그루와 60종의 야생초나 꽃 등이 심겨지면서 황무지가 초지로 바뀌었다. 호박·감자·콩·녹두·땅콩·들깨·해바라기 등 조수의 먹이가 되는 식물이 많이 심어지면서 동물들이 몰려들고 있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도남탁 홍보팀장은 "요즘은 동물보호가 주요 업무 중 하나가 됐다"고 말했다. 김경술 사무처장은 "2007년 열릴 차기 행사는 기존 문화엑스포에다 친환경 엑스포를 겸하도록 구상하고 있다"며 야생동물과 함께하는 엑스포 행사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으로가 문제

이 근처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크게 반기지 않는다. 개발행위와 영업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는 것. 한 건설업자는 "자칫 동물 몇 마리 나온 것을 두고 호들갑을 떨다 중요한 사업이 차질을 빚는 경우가 어디 한 둘이냐.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이라며 부정적 시각을 드러냈다. 엑스포공원에 터전을 만든 동물들의 앞길이 순탄치만은 않다는 점을 예견케 하는 대목이다.

보문단지 주도로인 천군로와 불국사로 연결되는 보불로 등 큰 길에는 자동차에 치여 죽은 동물시체가 적잖게 발견되고 있으며, 뻘논에 발이 빠져 허우적거리는 고라니 등도 잇따라 목격되고 있다.

엑스포 직원들은 보문호수와 엑스포공원을 중심으로 한 생태통로 개설이나 대규모 개발사업의 경우 더욱 철저한 환경영향 평가 등 당장 시급한 일도, 앞으로 해야 할 조치도 많다고 했다.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살 수 있는 방안을, 이곳을 모델로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경주·박정출기자 jcpark@imaeil.com

사진: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해바라기 꽃봉오리에 앉아 씨앗을 까먹느라 여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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