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CEO 탐구-(1)경영 철학

입력 2005-07-07 09:11:14

성실성 바탕 "세상을 행복하게" 조직혁신 추구

'CEO 주가(株價)'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CEO(최고경영자)는 그 기업의 성쇠를 결정짓는 중요한 자리다. 특히 대구경북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CEO의 책임과 역할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매일신문이 창간 59주년을 맞아 CEO에 대한 집중탐구에 나선 것도 CEO 역할에 대한 인식 확산과 함께 그들의 '대분발'을 촉진해 우리 경제를 다시 일으켜 보자는 뜻에서다.

(1)나의 경영철학

타이어 공장 말단 직원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지 27년 만에 세계 4위 자동차 회사인 르노·닛산그룹 회장에 오른 카를로스 곤. 부도 위기에 처한 일본 닛산자동차를 불과 1년 만에 흑자로 돌려놓아 세계 최고 CEO로 떠오른 그는 '경영은 변혁'이라고 정의했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 경영" "한 자리에 머무는 것은 경영이 아니다"는 말에서 변혁을 통해 부실기업을 회생시킨 그의 성공비결을 엿볼 수 있다.

이윤 추구가 기업의 가장 큰 목표이지만 기업경영에 대한 철학이 없는 CEO가 수장으로 있는 기업은 분명 '한계'가 있다. 경영철학이 없다면 마치 나침반 없이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아 큰 파도를 헤쳐나가기 힘들다. 기업 구성원들에게 자부심이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CEO가 어떤 경영철학을 갖고 있는가는 그 기업의 항로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두 아들 이름에 성실할 성자를 넣은 CEO

대구에 본사를 둔 전국 최대 공구 유통업체 책임테크툴 최영수 대표는 '인생 경험에서 우러난' 경영철학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33년 전 작은 자전거에 공구를 싣고 다니며 행상을 할 때부터 가슴에 품었던 것이 있었지요. 바로 정성과 정직입니다." 중고제품을 신제품으로 둔갑시키고, 같은 물건이라도 손님에 따라 가격을 달리 불렀던 그 시절, 최 대표는 고객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고객과의 약속을 성실하게 지키기로 굳게 마음을 먹었다. 그는 "그때 결심한 마음은 아마 제가 사업에서 손을 뗄 때까지 지켜나갈 경영철학"이라며 "그런 마음을 담아 두 아들의 이름에도 성실할 성(誠)자를 넣었다"고 털어놨다.

"대한민국의 자랑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기업을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제대로 된 공구를 선별해 그것을 우리의 산업현장, 건설현장, 연구소에 공급해 대한민국을 튼튼히 만드는 데 일조하겠다는 게 저의 신념이자 꿈이지요." 실제로 그 꿈이 이뤄지고 있는 것 같아 가슴이 뿌듯하다고 최 대표는 얘기했다.

닭고기 생산업체로 유명한 하림 CnF 이동영 대표도 보기엔 단순한 것 같지만 진리가 담긴 경영철학의 소유자다. "건강한 개인과 사회를 위해 깨끗하고 신선한(Clean & Fresh) 닭고기를 공급해 소비자들에게 사랑받고, 고객들이 신뢰하고, 직원들에게 행복을 주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 경영철학"이라고 밝혔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자"

대구를 전국 두 번째의 '게임산업 도시'로 만드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게임업체 KOG 이종원 대표.

"우리 기업의 모토는 '열정과 헌신으로 고객과 동료들을 행복하게 하자'는 것이지요. 사람들에게 행복을 안겨주는 게 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입니다." 해외에까지 진출, 돌풍을 일으키는 KOG의 '저력'도 바로 이 대표의 독특한 '행복론'에서 발원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회사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목적도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자는 것"이라며 "주위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있느냐는 질문에 자신있게 예라고 하지는 못하지만 행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SI(시스템 통합) 업체인 (주)애니넷 이원걸 대표는 회사 로고로 자신의 경영철학을 설명한다. 애니넷(ANYNET)의 A 이니셜은 에이스(최고)라는 뜻으로 제품, 인재, 시장점유율에서 최고를 목표로 한다는 것. 또 A자에 동양란 잎이 한 줄 가로로 그려져 있는데 이는 유(柔)하면서도, 언제나 기업이 성장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했다. "이 두 가지를 종합한 우리 기업의 경영이념은 기술중심-고품질제품 개발, 인간중심-인재양성 및 화합 단결, 고객중심-고객으로부터 평가받는 최고의 기업을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얘기했다.

◇세상을 움직이는 근원은 '사람'

레미콘 업체 등을 경영하며 경북경영자총협회장을 맡고 있는 김영석 대영산업 대표는 40여 년 사업에서 마주친 역경을 이겨나가는 과정에서 경영철학을 터득했다. "세상을 움직이는 근원은 바로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한 개인의 힘은 미약하지만 개개인의 개성과 능력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다면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충분한 힘이 생기는 법입니다." 천재 한 사람이 수만 명의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천재 한 사람의 힘만으로 기업을 유지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김 회장 지론. '참된 인간을 닮은' 기업을 만들어 보자는 게 소중하게 여기는 경영철학이다.

대학교수에서 CEO로 변신한 정충영 대구도시가스 대표는 '기업은 사회의 봉사기관'이란 경영철학을 갖고 있다. "사람마다 제각기 주어진 사명이 있듯이 기업도 각기 사명을 갖고 있다"며 "그 사명은 고객을 섬기는 것, 다시 말하면 고객을 만족시키는 것"이라고 얘기했다. 기업의 이익도 봉사에 대한 결과이며, 이 봉사를 원만히 행할 때 더 큰 이익을 가져온다는 생각이다. "이익을 위해 봉사를 하는 것과 봉사를 한 결과 이익을 얻는다는 것은 전혀 그 방향이 다른 것이고, 결과 역시 엄청나게 차이 납니다. 필요 이상의 이익은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기업의 중요한 책무라고 봅니다."

◇"변화해야 살아남는다"

화성산업(주)동아백화점 이인중 대표는 변동성이 큰 건설·유통업 CEO답게 '변화'를 강조하고 있다. "변화하지 않으면 존립할 수 없는 냉엄한 현실과 급격하게 변해 가는 기업환경에 한 발 앞서 대처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어요. 이렇게 해야만 항상 앞서가는 기업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인간 존엄의 가치를 근간으로 하는 상생(相生)과 나눔의 정신도 이 대표의 경영철학. "이 같은 철학을 바탕으로 고객 만족과 주주가치 제고, 직원 만족과 같은 기업경영의 기본에 충실한 경영을 해오고 있다"며 "더불어 윤리경영을 시행하고 건강한 기업을 만들어 항상 지역민과 함께하는 기업이 되고자 한다"고 털어놨다.

(주)태왕의 권성기 대표는 '남과 같이 일하면 남보다 더 잘할 수 없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목표를 이루는 과정은 항상 힘들고 어렵지만 처마 끝에 떨어지는 물이 땅에 홈을 파듯 꾸준히 목표를 향해 지속적으로 노력하다 보면 목표에 다다를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실천하고 있다는 것. 또 시대 변화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먼저 준비하고 기업을 변화시켜 적응하는가도 권 대표가 중요하게 여기는 경영철학.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시대의 변화를 예의주시하면서 기업의 체질과 발전방향을 선도하는 기업만이 무한 경쟁시대에서 살아 남을 수 있다는 것이 저의 소신입니다."

◇속도·지식·감성경영

제일모직 제진훈 대표의 경영철학은 지식·스피드·감성 경영. 기업경영에 있어 지식은 나무를 키울 때 없어서는 안될 자양분과 같고, 지식정보가 살아 움직이고 순환할 때 지식을 통한 가치창출이 실현된다는 얘기다. 그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환경과, 예측하기 힘든 위기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경영의 '스피드'가 중요하다"며 "스피디한 의사결정이 바로 경쟁력이며, 이는 곧 생산성 제고와 기회 선점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특히 '패션사업'과 같이 트렌드에 민감한 업종일수록 사업의 성공여부는 스피드에 달려 있다는 것. 제 대표는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조직원들 사이에 상호신뢰, 즐거움과 열정이 자리잡아야 하며 CEO는 감성경영을 통해 그러한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고 감성경영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인 (주)드림화인테크인베스트를 이끌고 있는 박윤환 대표도 속도·지식 경영의 신봉자.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도 빨랐기 때문"이라며 "신속한 의사결정 시스템과 실행체계를 갖춰야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얘기한다. 또 지식이 기업의 성패를 가름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박 대표는 "지식경영은 정보의 운영능력이 아니라 인간경영이므로 직원들에게 새롭고 도움이 되는 지식을 갖도록 고무시키고,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을 공유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 힘을 쏟고 있다"고 밝혔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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