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독립, 완성되지 않았다

입력 2005-07-07 08:57:27

지난 달 2일 오전 울산 앞바다. 한국과 일본의 경비정 13척이 팽팽히 대치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일본 EEZ(배타적 경제수역) 침범여부 문제를 둘러싼 이 사건은 39시간 만에 원만하게 해결됐지만 최근 들어 가뜩이나 불편해진 한·일 양국의 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한·일 우정의 해'인 올해, 양국은 역사인식을 놓고 깊은 갈등의 늪에 빠져 있다. 우리 근현대사에 지울 수 없는 상처인 을사늑약(乙巳勒約) 100년과 광복 60년, 한·일 관계 정상화 40년을 맞아 국내에서는 반일감정이 다시 높아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언제까지 '남' 탓만 하고 있을 것인가. 우리 스스로의 극일(克日)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우리 속에 남아 있는 '끝나지 않은 독립'을 찾아본다.

■미룰 수 없는 과거사 청산

지난 1943년 6월 어느 날. 이종숙(80·안동시 길안면)씨는 가족과 친지들의 눈물을 뒤로 하고 또래 젊은이 100여 명과 함께 일본으로 떠났다. 강제징용이었다. 이씨는 일본 가가와현(香川縣) 다카마쓰(高松) 탄광에 배치돼 광복 때까지 2년 넘게 막장 생활을 했다. 요즘도 기관지가 좋지 않아 병원에 다니고 있지만 임금은커녕 한·일 어느 국가로부터도 보상은 없었다.

정부 '일제 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진상규명위원회'에 따르면 이씨처럼 징집·징용·위안부 등으로 일제에 의해 강제로 동원됐다고 신고한 사람은 6월 26일 현재 전국에 16만2천여 명. 하지만 징용 피해자만 해도 8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지만 정부에 보관 중인 자료가 거의 없고 일본 측은 미온적인 반응만 보여 진상규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진상규명위원회 자문위원인 대구KYC 김동렬(39) 사무처장은 "60년간 잊어진 채 방치돼 온 일제 강점기 피해자들은 대부분 고령인 만큼 조사가 더 늦춰져선 안된다"라며 "일본에 대한 보상요구에 앞서 우리 내부의 과거사 청산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대구·경북에는 종군위안부 21명과 445명의 원폭피해자 등이 일제강점기 시절에 겪었던 육체적, 정신적 고통으로 힘든 삶을 이어가고 있다.

■무의식 속에 남아 있는 잔재

무의식 속에 방치돼 우리 사회에 폐해를 끼치고 있는 일제잔재의 청산도 빠뜨려서는 안된다. 일제잔재란 일본 강점으로 우리 땅에 남은 모든 형태의 부정적 유산을 말하지만 대부분 무형의 형태다. 일본 '황국신민의 서사'와 '교육칙어'를 모방한 '국기에 대한 맹세'와 '국민교육헌장'이 그러하며 기합과 구타, 화투 등 각종 놀이문화에도 식민지 이데올로기가 녹아 들어 있다.

특히 문화관광부·광복60주년기념 문화사업추진위원회가 추진하고 있는 '일제 문화잔재 바로 알고 바로 잡기' 시민제안 공모전에는 중요 무형문화재 1호인 종묘제례악마저 일제 치하에서 변형됐다는 주장 등 예민한 내용이 상당수 포함돼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일상 속의 언어와 전문분야 용어, 지명에도 일제 잔재는 남아 있다. 국립국어원이 최근 발간한 '국어순화자료집'에 따르면 순화대상인 일본식 생활용어는 무려 1천427개. '고참(선임)', '십팔번(단골노래)', '사물함(개인보관함)', '뗑깡(생떼)', '무데뽀(막무가내)', '단도리(단속)', '엑기스(진액)', '레지(다방종업원) 등 헤아리기조차 힘들다.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된 이후 나타난 유행어·시사용어 중에도 '망가(만화)', '이지메(집단 따돌림)', '원조교제' 등 일본어는 여과없이 쓰이고 있다.

■돌아오지 않는 문화재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문화재를 둘러싼 과거사 청산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의 미해결 과제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세계 20여 국에 유출된 우리 문화재는 7만5천 점에 이른다. 이 가운데 3만4천점 정도가 일본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더욱이 개인이 은닉하고 있는 것들을 포함하면 실제 숫자는 수십 배에 이를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일제의 문화재 약탈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은 미흡하기 짝이 없었다. 한·일협정 당시 정부는 조선총독부가 반출한 고분 출토품과 일본인 개인이 약탈한 문화재 4천479점의 반환을 요구했으나 일본은 국공유 1천432점만 반환하는데 그쳤다.

최근 100년 만의 환국(還國)이 결정된 '북관대첩비' 역시 정부가 아닌 민간단체들이 반환운동을 벌여온 것도 부끄러운 일이다. 임진왜란 당시 정문부(鄭文孚) 장군이 최초로 의병을 규합, 왜군을 격퇴한 전공을 기념해 1707년 함경북도 길주군에 세운 승전기념비인 '북관대첩비'는 1905년 러일전쟁 중 일본군이 약탈, 침략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신사' 한 구석에 버려져 있다.

김규탁(61) 경북도문화재연구원 사무처장은 "대구·경북은 전국 국가지정 문화재의 20%가 있을 정도로 문화재의 보고인 만큼 약탈된 문화재도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일본 국보 1호인 쿄토 코류지(廣隆寺) 목조반가사유상도 경북 춘양목으로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절실한 경제독립

지난해 우리 나라의 대일 무역적자는 244억 달러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총 무역흑자 294억 달러의 83% 수준이다. 국교 정상화 이후 대일 무역적자 누적액수는 천문학적이어서 무려 2천300억 달러에 이른다.

문제는 대일 무역적자 규모는 우리 수출이 늘면 늘수록 더욱 커진다는 데 있다. 기술력이 떨어져 한국의 주요 수출품인 반도체·휴대전화·LCD 등의 제조장비와 핵심 부품을 대부분 일본으로부터 수입하기 때문. 우리 산업 구조의 대일의존도 탈피가 시급한 과제임을 그대로 드러내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1999년 시행된 '신(新) 한·일 어업협정'의 파기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영유권과 무관한 어업협정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어획고 감소뿐 아니라 독도 수역을 중간수역으로 설정, 독도의 지위를 약화시켰다는 것. 독도 주변 바다에는 약 150조 원에 상당하는 가스 하이드레이트(해저 땅 속에 고체형태로 얼어 있는 천연가스) 6억t이 매장돼 있으나 독도의 주권이 훼손될 경우 우리의 입지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손성락(40) 독도역사찾기 대구경북운동본부 사무처장은 "독도 주변 수역을 공동관리수역으로 포함시킨 것은 우리 스스로 독도를 포기한 행위"라며 "신한일어업협정의 파기야말로 독도 위기를 본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상헌기자 dava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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