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 애덤 스미스의 뺨을 치다

입력 2005-06-25 13:35:49

오귀환 지음/한겨레신문사 펴냄

'물건값이 싸다는 것은 장차 비싸질 조짐이며 값이 비싸다는 것은 싸질 조짐이다.'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의 수요'공급의 법칙이 아니라 2100여 년전 사마천이 '사기-화식열전'(재화를 증식시키는 사람들)에서 밝힌 내용이다. 사마천이 '화식열전'을 통해 주장한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근본은 경제다. 경제는 자유방임주의를 큰 뼈대로 하면서 적절한 국가의 개입을 보완책으로 결합한다' 등의 경제관은 전문성과 시대를 뛰어넘는 통찰력의 깊이가 보통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역사적 인물들의 기상천외한 삶의 모습들을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는 인문교양서다. 벤처 창업을 주도한 동명성왕, 근세 일본의 기초를 닦은 도쿠가와 이에야스, 청해진을 국제적인 무역항으로 만든 장보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영웅 이순신 등 5천년 인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동'서양 인물 20여 명의 삶의 방식이 21세기적 시각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장사 수완이 좋은 사람들을 장거리 이동형 판매조직으로 활용, 유통형 프랜차이즈업을 성공시킨 '사사', 대장장이로 성공한 뒤 행상'대부업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시킨 '병씨' 등 '화식열전'에 나타난 주인공들의 치부 방법은 현재의 재테크와 다르지 않다.

또 1232년 3월 금나라 도시 가이펑(開封) 공격에 나선 몽골군은 금나라 백성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카이펑 백성들을 학살하려고 했다. 그러자 몽골의 대재상 야율초재가 "제국은 말을 타고 건설할 수는 있지만 말을 탄 채 통치할 수는 없다"고 간언해 140만 명의 목숨을 구했다. 저자는 야율초재 일화를 통해 미국의 무력이 판치는 시대, 미국에는 야율초재와 같은 생명의 수호자는 없을까라며 반문하고 있다.

개빈 맨지스는 2002년 '1421 중국, 세계를 발견하다'라는 책을 내 놓았다.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한 것보다 71년 일찍 명나라 제독 정화 함대가 1421년 아메리카를 발견했다는 사실이 담긴 이 책은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200척 규모로 이루어진 정화 함대의 규모와 놀라운 항해술, 콜럼버스가 정화의 지도를 손에 들고 아메리카를 발견했다는 증거를 보여주고 있다. 정화 함대가 아메리카에 흔적을 남긴 이야기와 함께 유학자들의 세력 다툼에 희생된 정화 함대의 비극적 결말을 얘기하면서 정화 함대의 대항해가 계속되었다면 아메리카가 유럽의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상상도 해본다.

진나라 왕자에게 전 재산을 투자하고 아들을 잉태한 무희까지 왕자에게 준 여불위는 승상까지 오르는 권력을 잡았으나 결국 아들 진시황에게 죽음을 당하고 만다. 그에 반해 뛰어난 정치가였다가 상인으로 변신한 범려는 권력과 재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나눔을 실천해 자손 대대로 번창하고 부자가 된 일화는 권력에 집착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남긴 삶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또 남송의 명장 악비를 통해서는 중국 중앙권력의 자의적인 역사 해석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악비는 12세기 초 금나라에 맞서 싸워 어려움에 빠진 송나라 자존심을 한껏 높여 후대 사람들에게 민족영웅으로 추대받았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50여개 민족으로 이루어진 국가 구조의 특성상, 한족인 악비를 민족영웅의 자리에 그냥 둘 수 없어 '신악비론'을 등장시켜 악비 폄하정책을 폈으나 민중의 반발을 사게 됐다. 저자는 '동북공정' 프로젝트로 고구려 역사를 왜곡하는 중국의 중화 독존주의를 비난하고 있다.

'백리 안에 굶는 이가 없게 하라'는 가훈으로 조선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구현한 경주 최부잣집 300년의 비밀과 왕조의 몰락과 참극 속에서도 살아 남아 세계로 펴져 나간 오씨를 비롯, 진시황의 후예라는 설이 있는 진씨 등의 사례는 명문가의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저자는 정치적 이유로 여성 인물을 지폐 모델로 쓴 일본, 전 세계적으로 화폐에 가장 많이 등장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등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선덕여왕, 신사임당, 유관순 등을 우리나라 여성 화폐인물 후보로 거론하고 있다.

특히 17세의 나이에 온 몸을 던져 일본 제국주의에 맞선 유관순을 1492년 영국과의 백년전쟁에서 패색이 짙던 조국 프랑스를 구하기 위해 역시 17세의 나이에 전쟁에 나선 잔다르크와 비교하고 있다. 파리 잔다르크기념관에 영정이 봉안된 유관순. 같은 나이에 조국의 위난을 보고 떨쳐 일어난 두 사람의 공통점 때문이다.

이경달기자 sarang@imaeil.com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