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문화예술인 연보

입력 2005-06-25 11:07:04

한국 근대문인화의 거두 팔능거사 서병오(1862~1936)

나라 빼앗긴 울분 붓에 담은 경제인 서예가 박기돈(1873~1948)

시(詩)서(書)화(畵) 삼절 김진만(1876~1933)

무욕과 방랑벽의 '대구판 장승업' 허기석(1878~1934)

해인사 수호한 신필 임환경(1887~1984)

극예술연구회 창립한 연극인 홍해성(1893~1957)

시서화에 전각까지 능한 독립운동가 이상정(1897~1947)

'켄터키 옛집' 번역한 대구혼성합창의 창시자 박태원(1897~1927)과 한국 합창운동의 선구자 박태준(1900~1986)

이미지즘의 선구시인 이장희(1900~1929)

손기정 가슴에서 일장기 떼낸 애국 소설가 현진건(1900~1943)

문화인 사랑방을 차려 화가 이인성 키운 서동진(1900~1970)

일제에 '빼앗긴 들'을 찾으려던 열혈시인 이상화(1901~1943)

'조선복식고' 저자로 민족예술의 이론가 이여성(1901~1961)과 리얼리즘의 인민화가 이쾌대(1913~1965)

영제시조 전승한 이기릉(1901~1996)

은밀한 시어에 민족적 울분 담은 오일도(1901~1946)

억척으로 대구문화의 씨를 뿌린 백기만(1902~1969)

대구가 낳은 서화계의 대가 서동균(1903~1969)

지역에서 활동한 성악가 권태호(1903~1969)

친일 논란에 퇴색된 양악사의 큰별 현제명(1903~1960)

'근원수필' 저자이면서 미술사의 권위 김용준(1904~1967)

개성적 화풍의 외톨이 서양화가 황술조(1904~1939)

'황성옛터'를 작사한 시인, 연출가, 배우 왕평(1904~1943)

'임자없는 나룻배'의 영화감독 이규환(1904~1982)

청포도 시인 이육사(1904~1944)와 문학평론가 이원조(1909~1955)

춘향전을 무대에 올린 '아귀도'의 작가 장혁주(1905~1952년 일본귀화)

화랑입구에서 타계한 신동 서양화가 손일봉(1906~1985)

대구에서 양화 개인전 연 박명조(1906~1969)

경향파에서 구인회로 돌아선 영화인 김유영(1907~1939)

'물새 발자욱'의 순수한 영혼 윤복진(1907~1991)

향토회 창립한 서양화가 배명학(1907~1973)

불꽃처럼 살다간 '적빈'의 소설가 백신애(1908~1939)

비판적 시대정신의 시인 이설주(1908~2001)

포항을 사랑한 검은 갈매기 문인 한흑구(1909~1979)

국내 첫 누드전 연 화가 서진달(1910~1947)

자살한 무대예술가 이상춘(1910~1936)

대구가 낳은 천재화가 이인성(1912~1950)

현대시조 중흥에 이바지한 이호우(1912~1970)와 여동생 이영도(1916~1977)

'순정해협' 등 32편의 영화 남긴 감독 신경균(1912~1981)

용비어천가 해제한 귀재 김성칠(1913~1951)

경주 북천을 소재로 한 소설 '巫女圖' 작가 김동리(1913~1995)

해방후 최초의 시전문지 '竹筍'으로 대구정신 되살린 이윤수(1914~1997)

'다정도 병이런가'의 소설가 장덕조(1914~2002)

일본의 임나일본부설 제압한 세계적 석학 김석형(1915~1996)

일본 H씨상 수상한 낙동강 시인 최화국(1915~1996)

LA에서 타계한 '나그네 설움' 가수 백년설(1915~1980)

해방후 대구에서 규포시집 낸 황윤섭(1915~1951)

초창기 오페라 운동 이끈 바리톤 이점희(1915~1991)

영양이 낳은 화가 금경연(1915~1948)

불행한 시대를 그린 요절화가 김용조(1916~1943)

시대를 앞서간 경주 출신 서양화가 박지홍(1916~1991)

민요적 가락에 나그네 풍경 담은 박목월(1916~1978)

'날이 갈수록'의 시인 박훈산(1919~1985)

'승무'의 청록파 시인 조지훈(1920~1968)

'껍데기는 가라'던 시인 신동집(1924~2003)

한국예술가곡의 선구자 김진균(1925~1986)

일본에서 높은 평가 '온돌 야화'의 윤학준(1932~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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