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동에서)경기도민이 부러운 이유

입력 2005-06-23 11:03:53

경기도 북부의 파주시는 지금 한마디로 개벽 중이다. LG필립스가 황무지 50만 평에 LCD공장을 짓기 시작한 이후 트럭과 사람이 들끓고 있다. 인근 지역의 땅값이 치솟고 아파트와 상가를 짓는 공사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북한에 인접한 경기도의 최고 오지 파주는 이제 옛말이다.

파주의 변모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LG필립스가 1단계 공사에 투입한 돈은 5조 원에 불과하고 추후 20조 원을 더 투자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그 이후 파주가 어떤 모습일지 짐작하는 것은 현재로서 상상력이 아무리 풍부해도 쉽지않은 노릇이다.

구미 출신인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은 최근 사석에서 그랬다고 한다. "장관이 되고 나서 여기 저기 시찰했는데 가장 놀란 것은 파주였습니다. LG필립스 공장 전체를 둘러보니 정말 대단했어요." 3만여 명의 일꾼들이 광활한 땅에서 온갖 중장비와 함께 개미처럼 공장을 짓고 있으니 추 장관이 놀랄만도 했다.

추 장관은 그때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텅텅 비어있는 구미4단지가 우선 떠올랐을 게다. 구미가 앞으로 큰 일이란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이런 공장 몇 개만 수도권에 더 지으면 참여정부의 지방분권, 지방분산 정책은 말짱 도루묵이라 판단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그랬다고 한다.

파주는 원래 공장을 지을 곳이 아니었다. 공장 부지 주변이 온통 군부대로 군사작전 구역이었고 공업용수도 부족했다. 그러나 그것이 허용됐고 내년 초 1단계 프로젝트가 완성된다.

수도권 최초의 대규모 공장이 지방화를 주요 국정지표로 삼고 있는 참여정부에서 허용됐다는 것은 일종의 아이러니다. 하지만 여기엔 몇가지 요인이 있다.

먼저 노무현 대통령이 수도권과 지방의 상생을 위해 수도권에도 허용할 것은 허용해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었던 것이 첫 요인이다. 파주가 아니면 대만 등 제3국에 공장을 짓겠다는 공갈(?)도 주효했다. 공장이 외국으로 빠져나가 산업공동화 우려가 나오고 있는 마당에 노 대통령도 이런 큰 프로젝트를 제3국에 넘겨주고 싶지는 않았을 게다.

더 큰 요인은 손학규 경기지사다. 알만한 사람들은 파주공장을 그의 작품으로 꼽는다. 손 지사는 LG필립스가 공장을 지으려한다는 첩보를 듣고 경기도 유치를 위해 동서남북으로 뛰었다. LG필립스에 낮은 땅값과 각종 행정지원 등 당근을 던졌다. '파주 아니면 3국행'이란 '공갈용 채찍'을 LG필립스가 아니라 손 지사가 만들었다는 소문도 있다. 그게 사실이라면 '파주 개벽'의 연출가는 손 지사가 된다.

지방분권주의자의 눈에 이런 손 지사가 무척 얄밉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자기 지역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지사를 나무랄 일만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런 지사를 가진 경기도민이 부럽다.

최재왕 기자(정치2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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