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낮추며 평생 '선비' 외길 고집

입력 2005-06-16 09:18:58

남산동 딸깍발이 윤원돌씨 도심속 은자생활 20년

세상이 참 어지럽다.

부정부패와 사기, 거짓말이 진실을 덮고 남보다 높아지기 위해 악다구니로 살아가고 있다

가진 것 없지만 청렴하고 강직하게 살아왔던 그 옛날 '선비'가 그리운 요즘이다.

주민들로부터 '남산동 딸깍발이'로 불리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를 찾아나섰다.

대구 중구 남산동 향교 근처 다락방에서 20년째 선비의 길을 걷고 있는 남천(南泉) 윤원돌(尹元乭·60) 선생.

3평 남짓한 그의 거처에 들어서자 켜켜이 쌓여 있는 한지에 연습한 붓글씨·동양화와 사서삼경 등 각종 경서들이 선비의 고뇌를 대변하는 것 같았다.

가끔 뜻있는 분들이 그에게 새로운 거처를 마련해주려고 해도 그는 한사코 거부한다.

'포난사음욕, 기한발도심(飽煖思淫慾 飢寒發道心:배부르고 따뜻한 곳에서 호강하면 음욕이 생기고, 굶주리고 추운 곳에서 고생하면 도심이 생긴다).' 수행 정진이 어느 정도 끝날 때까지는 말이다.

그는 새벽 4시면 일어나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하며 독서와 붓글씨로 수행에 정진한다.

엄동설한에도 냉수마찰로 온 몸을 닦아내며 짜고 맵고 단 음식을 멀리한다.

술, 담배, 고기는 일절 하지않고 소금 넣지 않은 국과 밥 반 그릇이 전부이다.

젊어서부터 일찌감치 '입신양명'의 길 대신 '배움'의 길을 선택한 그는 결혼 후에도 배움에 방해가 된다고 직장을 갖지 않고 이 다락방에서 서도와 경전 공부에만 열중했다.

그가 세상과의 소통을 시작한 것은 불혹의 나이를 넘기면서부터. 사회와 너무 동떨어져 사는 것이 진정한 선비의 도리가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수백 차례의 주례사, 청소년 교양강좌, 인생 상담 등은 그런 교통의 수단이었고 무료로 행해졌다.

돈을 받고 배움을 파는 것이 '무소유'의 삶을 살아가는 그에게는 가당치 않은 일이었다.

선비의 삶을 묻자 그는 "첫째 부모가 살아 있어 좋고, 둘째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사는 것, 셋째 영특한 인재를 기르는 것"이라는 군자 삼락(三樂)으로 화답했다.

또 그는 "자기 마음이 올바른 사람, 남들 앞에 봉사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베푸는 정신을 갖춘 사람이 현대의 선비입니다.

옛날처럼 담뱃대 물고, 비가 와서 나락이 떠내려가도 가만히 앉아있는 선비가 아니고 움직이는 선비가 지금 필요한 선비"라고 말했다.

언젠가는 산속,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 부족한 공부를 하면서 조용히 지내고 싶다는 그는 "내 스스로 부족함을 알지만 아직 날 찾는 이들이 있고, 그들이 내 도움을 필요로 해서 뿌리치지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 내 뜻이 그분들과 통할 때 그때 산으로 가야죠"라며 선을 그었다.

'이것까지 참아라'는 그의 좌우명처럼 스스로를 낮춰, 보이지 않는 작은 자신에게까지 내려가려는 선비 남천 윤원돌 선생. 서쪽 벽면에 붙여둔 종이에 도심의 석양이 붉게 물들 때쯤, 바닥에 긴 종이를 깔고 커다란 붓으로 먹을 찍었다.

한 번의 멈춤 없이 써내려가는 그의 붓끝에서 이 시대 한 선비의 고집스러움이 진하게 묻어나고 있었다.

전수영기자 poi2@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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