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진 곳 숨은이야기] 영천아리랑의 귀환

입력 2005-06-11 08:38:20

'아주까리 동배야/ 더 많이 열려라/ 산골집 큰애기/ 신바람 난다

머루야 다래야/ 더 많이 열려라/ 산골집 큰애기/ 신바람 난다

앵두나 오디는/ 단맛에 먹구요/ 딸기나 살구는/ 신맛에 먹는다

저 건너 앞산에/ 봉화가 떴구나/ 우리님을 어절씨구/ 만나를 보잔다

울넘어 담넘어/ 님 숨겨 두고/ 호박잎 난들난들/ 날 속였소

아라린가 스라린가/ 영천인가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오'

정선아리랑과 밀양아리랑·진도아리랑 등 우리 민족의 애환을 담고 있는 아리랑은 남북한을 통틀어 60여 가지 3천600여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지역마다 독특한 정서를 반영하며 우리 귀에 익숙한 전래 아리랑과 달리 영천아리랑은 소리의 맥이 완전히 끊겼다가 지난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때 극적으로 발굴돼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작품이다.

물론 정상회담 이전에도 일부 학자들에 의해 북한에 영천아리랑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어렴풋이 전해져 왔지만 노래 속에 등장하는 지명이 경북 영천이란 확증이 없어 일반인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영천아리랑은 6·15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양공항에 내렸을 때 환영 나온 북한 합창단과 주민들이 불렀다.

당시 북한은 김 전 대통령의 방문을 앞두고 남북화합을 상징하는 노래로 영천아리랑을 골랐는데 환영곡 하나 선정에도 고민한 흔적이 역력해 보인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만남이라는 뉴스에 가려 영천아리랑의 존재는 묻혀버렸고 이 노래가사를 주목했던 일부 수행원들도 영천이 얼마 전 폭발사고가 난 '용천'으로 알아들었던 것.

이에 따라 김 전 대통령의 방북기간 동안 영천아리랑은 가는 곳마다 배경음악으로 꾸준히 흘러 나왔지만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러던 중 (사)한민족아리랑연합회가 영천아리랑의 고향이 경상도 영천이라는 고증을 발굴한데 이어 2001년 모 방송국의 6·15 특집방송 과정에서 영천지역 이주민들 사이에서 널리 불려졌던 노래라는 새로운 기록이 발견되면서 일반인에게도 알려지게 됐다.

또 북한 평양출판사에서 발행한 문화예술사전 역시 '영천아리랑은 대구와 함께 사과가 많이 나는 경북 영천이다'라고 명시하고 있어 영천아리랑은 반세기만에 되돌아 오게 됐다.

그러면 영천에서 맥이 끊긴 영천아리랑이 어떻게 북한에서 불려 졌을까. 한민족아리랑연합회 김연갑(52) 상임이사는 "일제강점기 때 강제이주된 영천주민들 사이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에서 불려졌던 것 같다"며 "일부에서 영천아리랑의 지명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으나 1934년 조선일보에 영천아리랑의 노랫말이 소개된 바 있다"고 전했다.

영천아리랑은 또 일제강점기 정치 탄압을 피해 만주와 중앙아시아, 옌볜 등지로 이주한 영천지역민들이 부르던 노래로 알려져 있다.

정작 영천지역에서는 한때 잠깐 불렸지만 중국 등 해외로 이주한 주민들이 노래말과 곡조를 퍼뜨린 것을 북한의 민족연구가들이 발굴·복원한 것이 오늘의 영천아리랑이라는 것.

영천 성남여고 백종걸(44·음악담당) 교사는 "영천아리랑은 동부민요 계통으로 선율면에서는 강원도아리랑과 같은 5박자로 구성되며 양산도 장단에 기초한 것과 엇모리 장단에 기초한 것 두가지 유형이 있다"고 말했다.

백씨는 아울러 "북한에서 편곡되고 불려지다보니 경쾌한 가락에 북쪽 여가수들의 애절한 창법이 가미된 북한식 민요의 특징도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영천아리랑 보전위원회 김태원 회장은 "영천아리랑이 이 지역 전통 민요로 밝혀진 만큼 노래비 제작과 노랫말 보급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영천·이채수기자cslee@imaeil.com사진: 반세기 만에 귀향한 영천지역의 전래민요 영천아리랑을 널리 알리기 위한'영천아리랑 축제'가 10일 오후 7시 영천시 화산면 가상리 시안아트센터(관장 변숙희)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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