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데스크-서울이면 다냐

입력 2005-06-10 11:24:49

9만 명. 지난 달 대구전시컨벤션센터(이하 엑스코)에서 열린 2005 국제소방방재안전엑스포(이하 소방엑스포)에 몰린 참관객 수다. 엑스코가 2001년 개관한 이래 최다 인파다. 지난해 세웠던 최다 관람객 기록을 한 해 만에 갈아치웠다.

소방엑스포는 성공한 전시회다. 관람객이 많이 몰렸을 뿐 아니라 참가 기업들이 올린 실적도 좋다. 덕분에 내년 전시회에 참가하겠다고 예약한 기업이 벌써 50여 개나 된다. 단 두 번 개최로 우리나라를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전시회로 자리 잡았다.

우리에게 소방엑스포는 여느 전시회와는 다른 의미와 무게를 갖고 있다. 2003년 2월 터졌던 대구지하철 참사의 아픈 기억과 사고 도시라는 오명을 씻고 '안전도시 대구'로 거듭나려는 온 시민의 의지가 집약된 전시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소방엑스포를 서울, 경기도가 노리고 있다. 아예 통째로 갖고 가려고 난리다.

지난해 첫 개최 후 서울, 경기도는 소방엑스포 개최지를 대구가 아닌 수도권으로 옮기자고 나섰다. 이유는 수도권에 인구와 관련 기업이 많다는 것.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이 사는 수도권에서 개최해야 각종 체험행사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논리다. 소방방재안전 관련 업체의 70% 이상이 수도권에 집중해 있다는 점도 내세웠다.

경합 끝에 올 해 전시회는 대구에서 개최됐다. 지하철 참사를 겪었다는 점, 소방엑스포 자체가 대구의 아이디어라는 점이 힘이 됐다. 그 결과 앞서 말한 것처럼 엑스코 개관 이래 최다 관람객 기록을 세웠다. 문제는 서울, 경기도가 호락호락 물러날 눈치는 아니라는 점이다. 어떻게 아냐고? 다름 아닌 그들의 전력 때문이다.

국제정보디스플레이 학술대회 및 전시회(IMID'이하 디스플레이전)는 서울 코엑스에서 무관심한 틈을 타 대구가 유치에 성공했던 전시회이다. 2001~2004년 4년 동안 대구에서 개최되었는데 이 역시 예상 못한(누가? 서울, 경기도가 예상 못한) 성공을 거뒀다. 1회 때 논문 발표 230편, 139개 전시부스로 시작해서 4회 때에는 논문 360편에 부스 270개로 성장, 세계적 전문 학회 및 전시회로 당당히 자리 잡은 것이다.

디스플레이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확신했던 대구는 일찌감치 디스플레이전을 대구 대표 전시회로 키우자고 마음먹었다. 주최도 아닌 대구시가 5천만 원에서 2억 원까지 시 예산을 아끼지 않고 지원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올해 대회를 서울로 뺏기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우리나라 디스플레이산업이 세계적으로 앞서 있으므로 이 전시회를 더욱 국제화하기 위해 서울에서 개최한다는 논리였다.

지난해 대구에서 국내 최초의 모터사이클 전문 전시회로 열린 대한민국 국제모터사이클쇼(이하 모터사이클쇼). 표를 사서 입장한 관객만 6만3천 명이 될 정도로 성공한 전시회다. 다른 지역에서 열리는 자동차쇼에 착안해 틈새시장이라 할 수 있는 오토바이쇼를 기획한 것이다. 그런데? 역시 서울이 나섰다. 내년 4월에 똑같은 모터사이클쇼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또 있다. 대구를 대표하는 전통산업의 하나인 안경 관련 전시회인 대구국제광학전을 본떠 서울에서 올해 광학쇼라는 모방 전시회가 개최됐다. 소방엑스포 얘기로 돌아가 보자.

지하철 참사로 대구가 겪은 고통은 이루 말로 다하기 힘들다. 소방엑스포는 이런 고통을 딛고 탄생한 것이다. 사람 많고 기업 많다며 수도권으로 가져가겠다고 할 사안이 아니다.

다른 전시회도 마찬가지다. 사실 눈앞의 효율성만 따지자면 지방 전시회의 경쟁력은 수도권보다 떨어진다. 수도권에 경제력이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국내외 교통도 편리하고 숙박시설도 훌륭하다. 전시'컨벤션 인프라도 월등히 좋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전시회 내빈으로 장관님 모시기도 수월하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전시회라는 전시회는 죄다 수도권에서 열려야 하나?

지방은 고유한 특성을 살린 특화 전시회를 육성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머리 짜내서 기획한 전시회를 키울 수 있는 권리도 보장돼야 한다. 대신 '대한민국의 인재와 돈이 다 모여 있다'는 수도권은 눈을 세계로 돌리는 게 맞다. 세계 최대 정보통신전인 독일 하노버 세빗(CeBIT)과 미국 CES, 세계 최대 소비재 박람회인 독일 프랑크푸르트 암비엔테(AMBIENTE) 등에 버금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전시회를 만들어 보라는 것이다. 수도권이 돈 될 성싶은 지방 전시회만 노리는 것은 좀스럽지 않은가!

이상훈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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