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만에 베를린서 진보·보수 동포 첫 만남

입력 2005-06-08 11:17:41

남북한 대사관 고위 관계자도 첫 참석

분단과 냉전의 현장에서 통일 독일의 수도로 변한 베를린에서 그동안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서로 경원시했던 동포들이 사상 처음으로 남북한 정부 관계자들까지 참석한 가운데 손을 맞잡았다.

7일 베를린의 독일 가톨릭 여성연맹 회관에선 250여 명의 교민이 참석한 가운데 베를린 한인회와 6·15 유럽 공동위가 함께 주최한 '6·15 공동선언 5주년 기념 유럽동포축전'이 열렸다.

이날 축전은 동독 분단과 냉전의 첨예한 대결 지대이자 동백림 사건 등 공안 조작 등의 특수한 역사적 상황 때문에 서로 경원시했던 보수와 진보 단체 소속 교민들이 독일 본격 이주 40여 년 만에 처음으로 함께 치른 행사다.

특히 장시정 베를린 총영사와 북한의 노태웅 공사 참사를 비롯한 남북한 대사관의 고위 외교 관계자들도 초청을 받아 사상 처음으로 교민행사에 나란히 참석했다.

이환도 베를린 교민회장은 축사에서 "1960∼70년대 보릿고개 시절에 돈벌러 간호사와 광부로 나와 수십년간 독일에 살아온 교민들은 늘 조국을 생각했으며, 통일을 이루는 독일이 무척 부러웠다"고 회고했다.

이 회장은 "그러나 남북 공동선언을 통해 민족의 앞날에 희망을 걸 수 있게 됐으며, 광복 60주년과 공동선언 5주년을 맞아 교민 사회가 처음으로 함께 어울리고 양측 대사관 관계자도 참석한 모습을 보니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박소은 유럽공동위위원장은 "이번 행사를 함께 준비하면서 서로를 많이 이해하고 좋은 관계를 갖게 됐다"면서 "앞으로 매년 행사를 함께 치르고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고 협력하는 모습을 전 독일과 유럽으로 확산시키자는데 공감했다"고 말했다.

아리랑 합창으로 시작된 이날 행사는 양측 대표의 환영사와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 해외 공동행사 남측 준비 위원회 백낙청 상임대표의 축전 낭독, 통일연구원 손기용 선임연구원의 강연 등으로 이어졌다.

모두가 손을 잡고 일어나 우리의 소원을 부르면서 눈시울을 붉혔던 교민들은 각종 축하공연을 본 뒤 '통일 비빔밥'으로 식사를 하고 밤늦게까지 노래자랑 등 여흥을 함께 즐기며 그동안의 오해와 서먹서먹했던 감정을 풀었다.

이날 행사는 대체로 순조롭게 진행됐으나 북한 측의 돌출행동으로 잠시 어색한 분위기가 빚어지기도 했다

노태웅 북한 공사참사는 "민족 자주와 공조가 중요한 데 (강연내용에) 외세에 의존적 사고를 내보이는 잘못된 점이 있어 참을 수 없다"면서 갑자기 연단으로 나와 미리 준비한 원고를 읽으며 5분여 동안 북한 측 입장을 설명했다.

노 참사는 행사의 원만한 진행을 위해서 예정에 없던 행동은 자제해달라는 주최 측 요청을 받자 바로 중단했다.

노 참사는 1부가 끝나자 주최 측 대표 및 한국 대사관 관계자들에게 "바쁜 일정이 있다"고 양해를 구한 뒤 자리를 떠 차에 오르기 전에도 강연 내용에 불만을 표시했으나 "앞으로도 교민행사에는 활발하게 참석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장 총영사는 남북 간에 벽이 남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옥에 티'는 있었으나 40여 년 만에 교민들이 하나되고 여기에 남북 정부 관계자가 함께 참석하고 대화 나눈 것 자체가 발전이자 6·15 선언과 관련한 실질적 진전"이라고 평했다.

(베를린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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