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하나 건너' 대구와 땅값 몇배차

입력 2005-06-08 11:40:58

(탐사보도)대구·경북 경계인(2)

경계인들은 지난 수십 년을 개발의 '그늘'에 신음해 왔다.그린벨트가 해제됐지만 그 이익은 외지인들의 몫이 더 많다. 경계 안팎에선 아파트, 공단 개발 등이 줄을 잇는 반면 유독 경계 지점은 이도 저도 아닌, 혐오시설만 가득 끌어안은 개발 사각지대로 방치되고 있다. 또 교통 불편으로 값비싼 비용까지 치르고 있다.

◇개발

대구 인근 시·군은 대구에 붙어 있어 광역시의 혜택을 볼까. 대구 북구와 경계인 칠곡군 동명면 구덕리. 1973년 대구광역권 도시계획에 따라 그린벨트로 묶였고, 85년 팔공산 도립공원지구로 지정된 것도 모자라 2003년에는 송림사 문화재지구로도 묶여 지난 수십 년간 개발 자체가 멈춘 곳이다.

건물 신축은 엄두도 못내며 증·개축도 워낙 규정이 까다로워 포기 상태다. 3중 규제는 집값과 땅값까지 묶어 다른 곳으로 이사도 가지 못하는 처지라는 것.

면 전체 면적의 3분의 1 이상이 그린벨트로 묶여 있는 인근 지천면 사람들도 개발 소외감에 멍들어 있었다. 심천리 이호연(60)씨는 "축사는 지어도 집은 못 짓는, 한마디로 소보다 못한 삶"이라고 했고, 용산리 윤석군(58)씨는 "50만 원과 5만 원, 단 '한걸음'을 사이에 두고 땅값이 10배나 차이 난다"고 하소연했다.

동명과 지천면 주민들은 "그린벨트도 서러운데 혐오시설까지 끌어안아야 했다"고 분개했다. 1970년대, 대구권 도시계획에 포함돼 있었던 일대엔 대구시립을 비롯해 현대, 조양, 학명, 청구 등 모두 6곳에 총 매장가능 기수 8만5천500기의 공원묘지가 줄줄이 들어섰다.

칠곡군 사람들은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들이 더 많은 곳'으로 부르고 있다. 지천의 이상선(66)씨는 "사통팔달로 길이 뚫려 교통 요지가 됐지만 대규모 공원묘지가 밀집해 개발이 어렵고 주변 모두가 그린벨트로 묶여 스쳐 지나가는 곳으로 전락하고 있다"며 "새로 길을 뚫는 곳이라도 그린벨트를 해제해 사람이 모이는 곳으로 만들어 달라"고 했다.

경산시 하양읍은 4년제 종합대학 3개와 2년제 대학 1개가 있는 교육도시여서 외지인들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실상은 정반대였다.

대학이 많아 스쳐가는 유동 인구만 늘 뿐 상주 인구는 내리막 길이다. 한때 4만 명을 바라봤던 인구는 대학이 줄을 잇는 속에서도 급격히 줄어 2만9천여 명에 불과하다. 읍민들은 "대학이 들어설 때마다 대학생들의 소비와 대구 사람들이 투자해 크게 발전할 것으로 여겼지만 개발은커녕 되레 낙후하고 있다"고 했다.

또 하양은 올 연말 완료되는 경산시 그린벨트 해제구역 거주 가구(858)의 절반(435)이나 차지하지만 남하, 청천, 환상리 주민들의 속내는 딴판이다.

남하 1리 김석재 이장은 "지난 수십 년은 대구시민들에게 신선한 공기를 제공하기 위해 땅이 묶였고, 그린벨트 해제로 주민들에게 이익이 돌아가야 하지만 미리 땅을 사놓은 대구사람들만 득을 본 꼴"이라며 "외지인들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마을 주민도 적잖다"고 말했다.

최근 영남대까지의 지하철 2호선 연장 소식은 읍민들에게 허탈감만 안겼다. 2호선보다 1호선이 먼저 건설됐고, 경산 못지 않은 교육도시인데도 1호선 연장은 감감무소식이어서다. 또 하양은 공단 등 제대로 된 생산시설 하나 없고, 상권도 경계지역인 대구의 안심 등지로 뺏긴 지 오래다.읍민들은 "10년 전 하양이 대구에 편입만 됐더라도 낙후지역으로 전락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씁쓸해 했다.

◇교통

경산시 중산동과 정평동은 대구 수성구 시지와 맞닿아 있다. 하지만 경계를 넘는 비용은 만만찮다. 택시를 탈 경우 바로 옆 사월동까지 기본요금 1천500원으로 충분히 갈 수 있지만 3배가 넘는 '경계비용' 5천 원을 줘야 선을 넘을 수 있다.

반대로 대구 반월당에서 중산동까지 택시요금 9천 원 정도면 충분히 올 수 있지만 역시 경계를 넘는다는 이유로 1만5천 원이라는 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

중산동의 박호택씨는 "경계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갈 경우가 많고, 3천∼4천 원이라도 깎기 위해 택시기사와 실랑이를 벌일 때도 적잖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또 대구 반월당에서 하양까지는 2만5천 원을 줘야 갈 수 있다. 대구 택시의 경우 경산이나 하양까지 손님을 내려주고 대구로 돌아갈 때 손님을 태울 수가 없어 하양 등지의 주민들은 시내로 돌아가는 비용까지 치르고 있는 셈.

2만1천300여 명이 거주하는 중산동과 정평동은 대단위 아파트 밀집지역이지만 버스노선은 3개에 불과하며 대구의 버스가 들어오지도 않는다는 것.

정평동의 주부 김순남(54)씨는 "대구 사람들은 경산 어디든 적은 비용으로 갈 수 있지만 경산사람은 그 반대"라고 했다.경산 주민들은 버스를 탈 때 항상 교통카드 2개와 현금도 가지고 타야 한다. 교통카드간 호환이 안 돼 경산의 버스를 탈 때는 신나리카드를, 대구의 버스를 탈 때는 대경카드를 제시해야 하고, 카드가 없을 때를 대비해 추가요금까지 감안한 현금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

경산시 관계자는 "교통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선 대구의 버스노선 체계에 경산을 포함해야 하고, 수년째 해결되지 않는 교통카드 통합도 시급한 과제"라고 했다. 칠곡 동명 사람들은 구덕리, 기성 1·2리, 남원 1·2리, 덕명리를 '곡6동'이라 부르고 있다.

곡6동은 골짜기에 있는 여섯 동네라는 의미. 동명면사무소까지만 해도 대구버스 3대가 5~10분마다 한 번씩 지나다니지만 곡 6동은 겨우 1대가 하루 9회만 운행하는 교통 오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일대엔 400여 상가가 들어섰고, 전원주택 100여 가구도 입주해 상주 인구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

이에 따라 교통 불편을 참다 못한 주민들은 올 들어 대구시에 대구 북구~칠곡 남원리 종점과 대구 동구~파계사 시·도 경계지점 간 버스 운행 대수를 늘려줄 것과 대왕재 시·도 경계지점~칠곡 기성리 신설 광역도로(2㎞)에 버스노선을 새로 만들어 줄 것으로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해결점은 보이지 않는다.

기성리 유종엽(50)씨는 "일대는 송림사, 가산산성 등 문화관광자원이 밀집해 많은 관광객들이 왕래하는 곳인데도 교통 사각지대로 방치하는 것은 경계지역에 위치해 행정적 관심을 받지 못한 이유가 크다"고 말했다.

기획탐사팀 이종규·이상준기자 대구권팀 이홍섭·강병서·김진만·정창구·이채수기자

사진:그린벨트의 경계인 도로에 서 있는 칠곡 동명의 한 주민. 그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땅값이 5배 이상 차이 난다"고 했다. 이채근·이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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