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 사람들 힘겨운 여름나기
햇볕이 따가운 5일 오후 3시쯤 쪽방이 밀집해 있는 대구 북구 칠성동 롯데백화점에서 칠성시장 사이 길. 여인숙 모양의 건물 안 좁은 복도 양쪽에 한 평 남짓한 쪽방들이 늘어서 있다. 몇 곳을 둘러봐도 인기척은 없다. 문이 잠긴 방보다 활짝 열린 방이 더 많다. 주인이 없는 경우도 있지만 귀중품이 없다 보니 문을 열어놓아도 물건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기 때문.
대구역 인근 한 쪽방 여주인은 "이곳 사람들은 날이 밝으면 나가 밤 늦게 하나 둘 들어옵니다. 더러 일거리를 찾아가기도 하지만 불경기에 허탕을 치거나 나이가 들어 일할 기회조차 없어 주로 무료 급식소에서 밥을 먹고, 나머지 시간엔 술병을 끼고 주위를 서성거립니다. 방값이 아까워 아예 거리로 나서는 경우도 많죠."
문을 열어본 한 쪽방 안은 햇빛 한 줌 들지 않았다. 창문이 없기 때문. 널브러져 있는 이부자리 옆에 빈 소주병들이 어지럽다. 환풍이 되지 않다 보니 방안에서는 후텁지근한 공기와 눅눅한 냄새가 가득했다. "날이 더워질수록 방을 빼는 사람이 많아집니다. 더러는 밀린 방세도 안 내고 사라집니다."
40대 한 쪽방 생활자의 요즘 생활. 작년만 해도 공사장에서 하루 벌이를 나섰는데 올 들어서는 아예 일손을 놓았다. 그래도 미련이 남아 아침 일찍 새벽 인력시장을 기웃거려 보지만 빈손으로 돌아오기 일쑤. 하루 중 대부분을 인근 공원의 나무 그늘이나 높다란 빌딩이 드리운 음지에서 시간을 때운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 보면 쾨쾨한 땀냄새가 온몸을 감싸지만 샤워는 엄두도 못 낸다. 그래도 선풍기 한 대 없는 방에서 벽만 쳐다보고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돌아다니는 편이 낫다.
쪽방 사람들에게 여름은 한층 힘겨운 계절이다. 여름에는 각종 단체에서 보내주는 자그마한 지원품도 아예 뚝 끊겨 버린다. 게다가 여름은 '없는 티'가 더 나 주위의 시선조차 곱지 않다. 경상감영공원 벤치에 앉아 술을 마시던 50대 손모씨는 "너 공부 안 하면 저 아저씨처럼 된다"며 길 가던 한 어머니가 초등학생 아들에게 눈을 흘기며 하던 말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대구쪽방상담소에 따르면 한 달 방값으로 5만~15만 원을 내고 이런 쪽방에서 생활하는 사람만 대구에서 700명이 넘는다.
대구쪽방상담소 강정우 간사는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를 갖는 이들은 1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며 "질병이나 사업실패, 가정불화 등으로 가족에게 소외된 이들이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 흘리는 땀을 닦아줄 수 있는 것은 우리 사회의 관심뿐"이라고 했다.
최두성기자 dscho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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