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오니소스적 요소의 중요성

입력 2005-06-06 11:27:47

어린이날을 며칠 앞두고 단골 서점에서 있었던 일이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책을 훑어보다가 삼십대 중반의 두 여성이 아이들에게 선물할 책을 고르며 주고받는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두 여성은 아이들의 논리력을 배양할 수 있는 책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몇 해 전 '논리야 놀자' 등과 같은 서적들이 쏟아져 나오던 때가 떠올라서 쓸데없이 끼어들어 아이들이 몇 살인지 물어보았다. 초등학교 3학년이라고 했다.

나는 그 아이들에게 논리 책을 읽히면 큰일 난다며 동시나 동화와 같은 작품집을 사주라고 충고했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그들에게 작품을 읽으며 정서적으로 진한 감동을 맛보는 것이 논리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논리를 논할 수 있는 바탕 지식이 없는 아이들에게 논리를 강요하는 행위는 그들에게서 책 읽기의 재미를 빼앗는 폭거이며, 자칫하면 정서적인 불구자가 되게 할 수도 있다고 지적해 주었다.

'비극의 탄생'은 니체가 27세 때 쓴 작품으로 그는 이 책에서 비극의 해석을 통하여 세계의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니체는 소크라테스의 합리주의에 의해 비극은 살해되었고, 소크라테스와 더불어 비극의 시대는 끝나고 이성과 이성적 인간의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지적한다. 니체는 소크라테스의 합리주의가 등장하여 그 세력이 강해짐에 따라 터무니없는 세계 상실이 초래되었다고 주장한다.

니체가 '비극의 탄생'에서 주장하고 있는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폴론은 꿈꾸는 정신이다. 인간은 꿈을 통해서만 현실이라고 하는 가상의 저편에 있는 본질을 탐구할 수 있다. 아폴론은 '미와 빛의 신'이다. 아폴론의 은총으로 그리스인들은 명랑하고 조화를 이룬 현세 긍정의 조형미술과 장엄한 서사시 같은 걸작을 생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폴론 신의 대극에 있는 디오니소스 신의 등장 없이 그리스 정신은 자기표현을 다하지 못한다. 아폴론이 미와 빛의 신이라면 디오니소스는 도취와 그늘의 신이다. 아폴론이 깨어있는 정신이라면 디오니소스는 취한 감동이다. 우리의 삶과 예술은 깨어 있는 이성과 취한 감동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작품도 이 두 요소가 조화를 이룰 때 가장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 우리의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지나칠 정도로 합리적인 것과 이성적인 것만을 추구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그러나 주기적으로 무엇인가에 도취되어 가슴 뭉클한 감동을 경험하지 않으면 합리성의 추구는 공허한 것이 되고 만다. 감동과 도취가 없는 지식의 추구는 삶을 메마르게 하여 궁극에는 개인을 황폐하게 만들 수 있다. 아폴론적인 요소만 강조하면 마른 고목나무와 같은 존재가 된다. 우리는 디오니소스적인 요소, 다시말해 잎과 꽃을 통해 나무전체를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우리의 아이들은 수학 문제를 풀고 영문 독해를 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틈틈이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자연의 품에 안겨 우주와 인생을 사색하는 시간도 가져야 한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잠잘 때까지 여러 학원을 돌아다녀야 하는 아이들의 삶은 얼마나 끔찍한가. 한 인격체의 완전한 발달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학부모들이 가장 관심 갖는 대학입시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도 아폴론적인 요소와 디오니소스적인 요소의 조화는 정말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윤일현(송원학원진학지도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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