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옥입니다-미소

입력 2005-06-01 11:17:07

하마나, 하마나, 인내하며 기다리지만 터널의 끝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어저께 한덕수 경제부총리가 한 포럼에서 "일본식 장기침체의 늪에 빠질 소지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힘이 쭉 빠진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들장미 소녀 캔디처럼 흥얼거려 보지만 마음은 자꾸만 가라앉는다.

수출은 줄고, 상점들은 사흘이 멀다하고 간판이 바뀌는데 공공요금은 날개라도 달린 듯 자꾸만 높아간다.

시장통 할머니의 목판 위 산나물은 한나절째 그대로이고, 무료급식 줄은 점점 길어지고, 행담도 개발이니 S프로젝트니 도통 무슨 말인지 복마전 같기만 하고'''. 이 사회에서 혜택받은 자들일수록 그리도 당당하게 제 나라를 포기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더구나 자신들은 국적포기자가 아니라 코스모폴리탄이며 글로벌 시티즌이라고 오히려 자부하고 있으니 놀랍기만 하다. 그들에게 우린 밴댕이처럼 좁은 가슴의, 촌티나는(?) 국수주의자들에 불과한 것인가.

이래저래 얼굴 환한 사람들을 보기가 쉽지 않다. 가뜩이나 무뚝뚝한 얼굴들이 데드마스크처럼 굳어져 있다. 비누내음 처럼 싱그러운 미소가 그리워진다.

미소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묘한 힘이 있다. 소설가이자 비행사였던 생 텍쥐페리는 미소 덕분에 살아난 적이 있다. 전투 중 포로로 잡혀 감방에 갇힌 생 텍쥐페리는 두려움을 이겨내려고 포켓을 더듬다 담배 한 개비를 찾아냈다. 간수에게 성냥불을 부탁했다. 간수가 성냥을 켜는 순간 무심결에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생 텍쥐페리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 "자식이 있소?" 간수의 물음에 그는 지갑 속의 가족사진을 보여주며 자식 이야기, 가족을 다시 못 만날지도 모르는 두려움 등에 대해 말했다. 갑자기 간수는 말없이 감옥문을 열더니 마을 끝까지 길안내를 해주었고 미소를 지으며 되돌아갔다.

상황이 암담할수록 미소 짓는 걸 잊지 말 일이다. 억지로라도 입이 웃으면 마음도 따라 웃게 되지 않을까. 미국의 철학자 월 로저스는 말했다. "역경에 웃는 것을 배우지 못하면 나이가 들어 웃을 일이 하나도 없다"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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