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광장-권력구조 개헌논쟁의 문제

입력 2005-05-25 08:27:16

87년의 민주화조치 이전까지 한국정치에 있어서 가장 중요했던 현안은 아마도 '대통령 직선제 쟁취'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는 절차적 민주주의와 관련된 문제였다. 민주화 이후 국민의 직접 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선출된다면, 이내 민주주의가 정착돼 우리나라도 선진국이 될 것이라고 여겼던 믿음은 그러나 곧 실망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 실망은 대통령제에 대한 회의와 비판으로 이어졌으며, 대통령제는 어느 순간 한국정치가 겪고 있는 만병의 근원과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망국적인 지역주의의 출현과 심화, 빈번하게 발생하는 행정부와 입법부사이의 대결정치, 그리고 이로 인해 야기되는 정부의 통치력 부재의 상황. 대통령제를 비판하는 정치인이나 학자들은 한국정치에서 나타나는 이와 같은 부정적인 현상의 배후요인으로 대통령제를 거론했던 것이다.

이들에 따르면, 대통령제에서는 50%이하의 득표로 당선이 가능하며, 이렇게 당선된 이는 행정부 전체를 장악하여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이 된다고 한다. 이렇게 대통령제에서는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기 때문에, 선거 경쟁자들은 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며, 한국의 지역주의는 이러한 부작용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또한 대통령제에서는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은 물론 입법부의 의원도 국민에 의해 선출되기 때문에 이 두 기구가 모두 정통성을 부여받게 되는 이중정통성(dual legitimacy)의 문제가 발생한다고 한다. 이 이중정통성 문제는 대통령 소속의 정당이 의회를 장악하지 못하는, 이른바 분점정부(divided government)의 상황이 발생할 때 심각해진다. 분점정부에서는 행정부와 입법부를 장악한 정당이 다르기 때문에 이 두 기구는 자주 갈등관계에 처하게 되고 쉽게 정국은 대결국면으로 치닫게 되었으며, 그 결과 그 어떤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정부의 통치력 부재 상황이 초래되었다는 것이다.

대통령제에 쏟아지는 이러한 비난이 과연 합당한 것인지에 대한 평가는 승자독식이나 이중정통성의 문제가 대통령제의 내재적 결함 때문에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 달리 말해 이 두 문제가 대통령제에만 나타나는 것인지, 그 여부에 달려있다고 하겠다. 만약 이 문제들이 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들에서도 발견된다면, 대통령제에 대한 비난은 잘못된 것이며, 한국정치에서 문제점이라고 지적되고 있는 현상들은 대통령제라는 권력구조가 아닌 어떤 다른 것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실제 승자독식의 문제는 내각제 국가 중 소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에서도 발생한다는 점이다. 가령 영국에서 주요 두 정당 중 하나는 50%이하의 득표로 의회의 과반의석을 확보해 행정부인 내각 전체를 장악한다. 이중정통성의 문제 또한 내각제 국가 중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들에서 나타난다. 상원의원과 하원의원 둘 다 국민의 투표에 의해 선출되기 때문에 상·하원 모두 정통성을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중정통성으로 인해 야기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몇몇 국가들에서는 비록 의회에서 선출되는 대통령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실질적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경우 대통령과 의회사이에서 정치적 갈등이 연출되기도 한다. 또한 분점정부의 상황도 굳이 대통령제라는 권력구조를 바꾸지 않고, 대통령과 의회선거의 실시시기를 조정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한국정치의 문제는 대통령제에 있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소선거구제나 선거 실시시기의 조정과 같은 선거제도와 관련된 사항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정치권과 학계는 여전히 대통령제와 내각제를 둘러싼 권력구조논쟁에서 못 벗어나 있을 뿐 아니라 이를 부채질하고 있다. 책임총리제의 실현이니, 이원집정제로의 개편이니, 의원내각제로의 개헌이니 혹은 순수대통령제로의 전환이니 하는 권력구조의 개편 문제는 사그라졌다가 다시 불거져 나오는 과정을 보이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2007년 대선 전에 반드시 권력구조 개편과 관련된 논의가 심각하게 제기될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그런데, 이 논쟁이 우려되는 것은 환자의 병에 대해 그릇된 원인 진단을 한 의사로 인해 환자의 생명이 위험에 빠질 수 있듯이, 한국사회의 문제라고 하는 것들에 대한 잘못된 원인 진단을 조장하는 권력구조 논쟁으로 인해 이 문제가 더욱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용흔/대구가톨릭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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