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댓글 '판관' 넘어 '폭력배'

입력 2005-05-23 10:38:04

순기능 커진 반면 융단폭격식 비난도

'사이버 판관', 'e 권력'으로 위세를 떨치는 인터넷 사이트 '댓글'의 사회적 폐해가 심각한 수준을 넘어섰다.사이버 저널로 등장한 댓글은 사건의 진실을 여론화하고, 사회를 비판·감시하는 순기능적 역할이 커지고 있는 반면 사생활, 사건과 무관한 주변 인물의 신상까지 마구 들춰내 융단폭격식 비난을 퍼붓고, 미확인 사실을 대량 유포하는 실정이다.

특히 최근에는 사회 저명인사는 물론 일반 시민의 사소한 문제까지 악플(비난성 댓글)의 표적으로 삼아 집단가학을 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 19일 지역 모 대학의 자유게시판은 'X사마' 논쟁이 불붙었다.

X사마는 한 고등학생이 이 대학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비롯됐다. 고등학생은 "이 대학 한 재학생이 모 인터넷 장터에서 헌신을 새신인 것처럼 속여 팔아 12만 원을 가로채고 최근 군에 입대했다"며 해당 재학생의 실명을 공개해 버린 것.

개인간의 사소한 문제인데다 정확한 사건경위를 확인할 수 없는데도 누군가 불을 놓으면 맹목적으로 달려들고 보는 인터넷 댓글 문화의 역기능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일부 네티즌들은 당장 해당 재학생을 X사마로 명명하고,19일 하루만 30건에 달하는 관련 글을 올렸고, 조회수 2만1천662건에 78건의 댓글이 줄을 잇는 등 파장은 들불처럼 번져가고 있었다.

더욱이 네티즌들은 해당 재학생의 학과와 학번에 부대 주소 및 개인 홈페이지까지 추적해 인터넷에 공개한데 이어 재학생 본인은 물론 아무런 상관도 없는 여자친구, 가족들의 얼굴까지 알아냈다.

"자퇴하고 대구를 떠나라", "멀쩡하게 생겼더만 불쌍한 인생 쫑나는구나", "사기 친 돈은 여자친구에게 쐈다더라"….이 같은 악플들이 난무하자 '이성을 찾자'는 진정 글도 잇따랐다.

한 재학생은 "네티즌들이 언제부터 개인간 문제까지 일일이 나서며 해결사 노릇을 해줬냐"며 "익명의 군중들에게 아무 상관없는 가족들까지 인권 침해 당하는 현실에 분노한다"고 했다.

지난 3월 발생한 서울대 도서관 대학생 폭행사건의 경우 당사자간에 충분히 화해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네티즌을 통해 인터넷에 폭행 사실이 알려지면서 가해 학생을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인터넷 주요 포털사이트 마다 가해 학생은 물론 여자 친구의 신상까지 낱낱이 공개돼 결국 가해 학생이 휴학하는 사태를 불러왔다.

악플 문화는 지난해 7월 모 인기 가수를 '뇌사마(뇌가 죽었다)'라 부르면서 봇물을 이루기 시작했고, 뇌사마를 비하하는 네티즌들은 지금까지 관련 기사 한 건에 무려 35만건의 리플을 달았다.

대구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 수사대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인신공격, 언어폭력 등 사이버 명예 훼손으로 형사처벌을 받은 경우가 128건에 이르고 있다.

최준영 수사대장은 "일반 시민, 개인간의 문제가 인터넷의 충동성과 익명성으로 사회 문제화하는 사례가 잦다"며 "사이버 세계의 인신공격, 언어폭력은 그 파급 속도가 엄청나다는 점에서 네티즌들의 이성적인 비판과 자제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기획탐사팀 이종규·이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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