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관의 인물탐방-헌법학 '태두' 김철수 교수

입력 2005-05-20 11:29:44

유신헌법 해석 면직위기 겪기도

헌법학의 태두(泰斗)인 김철수(金哲洙. 72) 명지대 석좌교수를 서울상도동 헌법학연구소로 찾아간 날, 점퍼차림의 그가 준 첫 인상은 '깐깐한 대가'가 아니었다. 굵은 뿔테 안경에 보일듯말듯한 눈, 수줍은 듯 웃으며 손님을 맞아주는 그는 대가를 찾아간 긴장을 금새 풀어주고 있었다. 그러나 헌법과 우리 정치에 대한 말문이 열리자 그는 곧바로 인권과 정의를 테마로 정진해 온 대가로 다가왔다. 나직하면서도 그의 대답은 막힘없이 이어졌고 단호했다. 3공시절부터 사법부의 독립과 함께 위헌법률 심사권의 행사를 주장해 온 그의 노력으로 탄생한 헌법재판소가 첫 화제였다.

대통령 탄핵사건 기각과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위헌결정을 두고 정부·여당이 상반된 반응을 보인 것에 그는 헌법이 지켜지지 않는 위기를 느낀다. 탄핵사건 기각결정도 법학자인 그로서는 마땅치 않다.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으나 국민이 불신임하지 않고 있다며 탄핵결정을 자제한 것은 법률적 판단 대신 정치적 판단을 한 것으로 비판한다.

헌법학에 있어 일찌감치 주목을 받았지만 그는 헌법개정 작업에 한번도 참여하지 않았다. 자신의 헌법구상이 반영될 수 없다는 판단에서 아예 거부했던 것이다. 현행 헌법이 만들어진 지난 87년에는 해외 체류중이었다. 지금 헌법이 잘 만들어졌다고 보지만 헌법재판소의 헌정수호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기 위해서는 사법부의 재판에 대해서도 헌법소원을 할 수 있도록 하고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를 동일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회의원의 임기를 2년으로 하는 것도 깨끗하고 성실한 국회를 만들 수 있다고 본다.

대학 졸업장을 받기도 전, 독일 유학길에 오른 그는 사법시험에 한번도 응시하지 않았다. 법관 대신 교수의 길을 선택한 그는 서울대에서 최단 정교수 기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사법시험을 보지 않은 일이 아쉬울 때가 있었다. 유신이후 그의 대표적 저서인 헌법학개론을 출간한 때였다. 유신헌법을 '민주적 대통령제'가 아닌 '공화적 군주제', 통일주체국민회의는 '견제기관'이 아닌 '협찬기관'이라고 한 구절이 문제가 돼 면직위기가 다가왔다. 그때 "변호사 자격증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법조계와 관계·정계에는 그의 제자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37년간 서울대 법대교수로 몸담은 그의 책 '헌법학개론'은 법대생의 필독서였다. 지난 3월 내놓은 제17전정신판은 장장 1천625쪽이나 되는 분량이다. 유신정부에서 5공에 이르기까지 그는 진보적 학자였다. 그러나 지금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수구보수다. 정부가 바뀌어도 그는 여전히 비판적인 학자에 머물고 있다. "헌법을 기초로 행정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내각책임제는 일관된 소신이다. 전쟁에 의한 통일이 아니라 평화통일을 하려면 내각제가 더욱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일찌감치 노동조합 정당 등 진보정당의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여러 정파가 정당을 통해 현실 정치에 참여해야 평화통일은 물론 진보 단체의 과격한 행위를 막을 수 있다고 믿는다.

대구 금호인터체인지 부근이 고향으로 경북고를 나왔다. 부친과 동생은 여전히 고향을 지킨다. 나이가 들면서 질서 의식이 아쉬워진다. 선배들을 이해하는 문화가 사라지는 풍토도 그렇다. 서로 존경하고 살기좋은 통일 조국을 보고 싶다고 한다.

서영관 논설위원 seo123@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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