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권력의 오만

입력 2005-05-19 11:40:21

특정 사안에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판단하는 것도 '권한'이라고 한다면 이땅에서 그 판단의 권한은 국민'언론에 있지않고 칼자루 쥔 쪽에 있다. 시민단체가 연일 반대성명을 내고 언론이 비판해도 석탄일 경제인 특별사면은 단행됐다. 권력자의 마이동풍, 우이독경이다. 그러기에 더욱, 법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관심은 정대철'이상수'안희정씨 같은 또다른 '노무현의 동지들'에게 가있다. 강금원은 8'15 특사의 예고편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작년 12월 전국법원장회의에서 정치인'고위공직자 및 주요 경제인 등 소위 '부패 엘리트'들에 대한 선고형량을 높이기로 작정했다. 솜방망이 처벌이 부패 불감증-재판 불신-국민적 박탈감으로 이어지고 있음에 대한 자기비판이었다.

대검 공판송무부 또한 올 2월 형집행정지 제도의 무원칙성을 인정, 특혜시비가 붙은 형집행정지의 요건을 강화하는 새 지침을 일선 검찰에 내려 보냈다. 수술이 필요한 사안이 아니면 형집행정지를 불허하고, 풀려난 위장(僞裝)환자들은 조사해서 재수감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법원과 검찰의 이 의지는 권력앞에서 작심삼일(作心三日)이 되고 있다. 2주 전 교도소에서 병원으로 옮긴 정대철 전 의원의 병실은 줄잇는 문병객으로 전혀 조용하지가 않다고 한다. 3개월 형집행정지 사유는 '중증 혈관경련성 협심증'으로 급사(急死)의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급사의 우려가 있는 사람을 김우식 청와대 비서실장 등 정치권 인사들이 찾아가 그를 괴롭히고(?) 있다는 얘기다.

입심좋기로 소문난 노회찬 민노당 의원은 작년 10월 서울고법 국감장에서 대단한 어록을 남겼다. 정치인들의 잇단 감형처분을 빗대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한 것이 아니라 (권력을 가진) 만 명에게만 평등하다"고 쏘아붙인 것이다. 아마도 노무현 대통령이 8'15 정치사면을 또 단행한다면 그는 "법은 부패정치인에게만, 그리고 대통령의 선생님이나 동지들에게만 평등하다"고 쏘아 붙이게 될 것이다.

이쯤에서 노 대통령의 보은(報恩)사면과 제갈공명의 읍참마속(泣斬馬謖)을 비교하게 된다. 서기 227년 위(魏)나라 사마중달과의 큰싸움을 앞두고 있던 촉(蜀)의 공명은 딱 한가지가 불안했다. 군량미 수송로인 가정(街亭)을 급습당하면 싸움은 그대로 패전이었다. 이때 스스로 가정 사수를 자청한 인물이 마속이었고, 그는 공명이 대성(大成)을 점치던 패기찬 인재였다. 그러나 마속은 경솔하게도 공명의 계책을 어기고 참패했다.

공명은 군율(軍律)에 따라 그의 목을 베었고 그 인물의 아까움에 엎드려 울었다. 부하들이 참수를 만류했을때 공명은 이렇게 답했다. "그를 잃는 것은 국가의 손실이다. 그러나 그를 베지 않으면 국가는 더 큰 손실을 입는다." 노짱 식으로 하면 곤장 몇대 치고 하옥 후 풀어주는 것이 시나리오 일텐데 공명은 대의(大義)를 위해 사정(私情)을 버렸던 것이다.

정대철, 이상수, 안희정씨 같은 이들이 호시탐탐, 정치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자명하다. 대통령의 사면, 노 대통령의 복권 통지서가 곧 날아올 것을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는 8월 광복 60주년에 부패정치인 사면을 단행한다면 '정략적 대사면'의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대통령은 지난 대선때 "사면권 행사를 엄격하게 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정략적 사면'복권의 되풀이가 법을 우습게 알게하고 무권유죄(無權有罪)의 원성을 낳아 국민 대통합은커녕 정부 신뢰만 추락시켜 왔음을 두 눈으로 보아왔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는 자신의 동지, 아군(我軍)마저 정치부패에 빠져있음을 몰랐던 때문이다. 이 두가지 상반된 인식의 노출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8'15 정치사면을 밀어붙인다면 실로 '권력의 오만'일 것이다.

며칠 전의 신문기사는 역대 대통령들의 사면'복권의 오'남용이 사법(司法)의 권위를 얼마나 파괴시켜 왔나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노태우 정권이래 지금까지 사면'복권된 196명의 '노블레스'들을 분석해봤더니 법원의 선고형량은 평균 2년 6개월 씩이지만 옥살이 기간은 앞부분은 날라가고 6개월에 불과했다. 국내법률가의 87%가 "대통령의 특별사면은 비리 정치'경제인 구제수단"이라고 믿는다는 형사정책연구원의 조사결과와도 일치했다.

이 땅에서 부패의 물레방아가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돌아가는 이유-그래서 '사면이 부패를 낳는다'는 지적은 정확하다. 바라건대 노 대통령이 이 누적된 '징크스'를 한번 깨트려 주길 갈망한다. 대의를 위해 정리(情理)를 끊으라. 민노당이 때맞춰 대통령의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개정을 추진한다고 한다. 두고 보자.

姜 健 泰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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