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세이-조막손

입력 2005-05-07 09:10:00

조막손 달걀 만지듯 한다는 말이 있다.

사물을 움켜잡지 못하고 주무르기만 하는 즉 시원하게 일을 처리해내지 못하는 경우를 두고 이른다.

남에게 베풀 줄 모르는 스케일 작은 사람을 조막손이라 업신여기기도 하고 능력 이상으로 대견하게 일을 해냈을 때 조막손이 달걀 훔친다는 말을 쓰는 것을 보면 조막손은 좋은 의미로는 쓰이지 않는다.

며칠 전 야시장에서 조막손 하나를 샀다.

아주 요긴하고 생광스러웠다.

팔 길이에 약간 못 미치는 대나무를 펴서는 한쪽 끝을 오므리고 네 개의 금을 넣어 다섯 손가락의 모양을 하고 있다.

가끔 노인네들의 방에서 이 물건을 보고는 고소를 금치 못했다.

관광지나 야시장 같은 곳에서 이 조막손을 발견하면 발걸음을 떼지 못할 때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아직은 이 조막손의 힘을 빌릴 만큼 나이가 들지 않았다면서 애써 외면했다.

근래 들어 등허리를 벅벅 긁고 싶을 때가 잦다.

근지러움은 꼭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더 심하다.

몸을 웅크리거나 오징어처럼 꼬고 비틀어도 도저히 손이 닿지 않을 때가 있다

아무리 목욕을 깨끗이 했더라도 아내나 아이들에게 손톱을 세워 긁어달라고 하기에는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서로 아비의 등을 긁겠다고 앞 다투던 아이들도 이제 머리가 굵어지고 나니 셔츠 속으로 손 넣어 긁어 달라는 부탁을 하기가 민망스럽다.

더구나 남의 손을 빌려 근지러운 곳을 정확히 찾거나 강약을 조절하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다.

몸의 구석구석 손닿지 않는 곳은 죄다 찾아다니며 시원하게 긁어주는 데 어느 효자가 이에 당할 손가.

일 년에 한 번을 쓰더라도 이 조막손이 얼마나 유용한지는 써본 사람만이 알리라. 어떤 잘난 노리개가 이처럼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랴. 출세하여 대처에 나간 번듯한 자식보다 곁에서 부모 공양하는 눈 먼 자식이 더 효자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세상의 자식들에게는 서운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 조막손만한 효자도 드물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기 전부터 수년 동안 새 학기가 시작되는 3·1절 기념식장에서 아버지는 전교생이 지켜보는 가운데 효자상을 받으셨다.

어떤 해는 군수로부터 또 어느 해는 도지사로부터 혹은 국무총리로부터 표창을 받으셨다.

아버지 어머니는 천상에 계셔야 할 분들인데 옥황상제의 눈 밖에 나서 잠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두 분은 병환 중의 할머니를 성심으로 간호했고, 때로는 억울한 소리를 들어도 할머니의 마음을 상하지 않도록 그 자리에서 해명하려 들지 않으셨다.

할머니는 손자들에게 '효자 밑에 효자 난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

효자 아버지 덕분에 우리 형제들은 아직도 고향에 가면 효자 아들로 통하고 있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우리들은 부모를 호강시켜드린 적도 없고 그 흔한 패키지 해외여행도 시켜드리지 못한 불효자식들이다.

아버지 어머니는 부모 속 썩이지 않는 것이 곧 효도라 하셨고 우리는 스스로 부모님의 속을 태운 적이 없으리라 믿고 있었다.

아비가 되고 보니 자식 키우면서 속 태우지 않는 부모가 세상에 없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우리의 불효가 세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는 것은 자식들에게 어떤 기대나 보답도 바라지 않으시고 그저 좋은 쪽으로만 이해하시는 부모님의 한없는 자식사랑 덕분이다.

자신의 영달을 위한 앞가림에 동분서주하다가 휴일에는 재충전이랍시고 들로 산으로 놀러나 다니는 다 큰 불효자식들이 사람들의 눈 밖에 날까봐 당신의 자식들은 모두 바쁘다는 말로 울타리를 치시는 분들이시다.

아, 그래서 효자는 부모가 만든다고 했던가.

오늘따라 어머니의 거실에 걸린 손때 묻은 조막손이 눈에 크게 들어온다.

배 아파 가며 낳고 공들여 키운 자식들이라도 뿔뿔이 흩어 놓고 홀로 사시는 어머니. 가려운 등 긁어 줄 사람도 외로움 달래줄 말벗도 아쉬우리라. 여섯 남매를 대신하는 그것을 어머니는 효자손이라 부르신다.

효도를 하고 싶어도 어버이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건만 난 여전히 어머니에겐 효자손 아닌 조막손에 불과하다.장호병 북랜드 발행인·대구과학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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