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술이 성공 좌우" 이송 서울성심병원장

입력 2005-04-29 17:05:16

서영관의 인물탐방

서울동대문구 청량리동 서울성심병원은 250병상 규모의 종합병원이다. 인공 관절 및 척추 수술 분야에서는 알아준다. 이송(李松·49)원장은 우리나라에서 인공관절 수술을 제일 많이 한 의사로 꼽힌다. 입소문을 듣고 환자들이 전국에서 찾아 오는 덕분에 동대문구 일대에 대학병원 등 먼저 출발한 종합병원이 5개나 있지만 개원 10여 년 만에 당당히 어깨를 겨룬다. 몇년 전부터는 정형외과와 마취과 수련의 교육과정도 개설했고 삼성의료원과 협력체계를 갖추고 있다. "전문기술로 승부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며 해외 연수 등을 통한 의료기술 선진화에 매달린 덕택에 "대학병원보다 환자가 적잖은 병원"이 됐다.

성심병원의 모태는 답십리 구세병원이다. 60평 규모의 작고 가난한 병원이었다. 민중운동을 하던 의사가 운영하던 병원으로 이 원장이 아직 대학병원 과장으로 근무할 때 틈틈이 무료 진료를 나갔던 병원이었다. 그 원장이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겠다며 병원을 맡으라고 제의했다. 고민 끝에 '편안한 생활이 아니라도 보람있는 길'이라 결정했다. 동갑내기 의사인 아내(金仁子)도 "도전적으로 나서서 봉사하라"고 권했다.

그래서 맡은 병원은 그야말로 '빈민병원'이었다. 연탄불을 땐 드럼통으로 소독하고 병실은 백열등으로 밝혔다. 응급환자는 들것으로 옮겼고 임대건물에 집기는 주워 온 것이 대부분이었다. 정부 지원도 없었다. 같이 일하겠다며 나섰던 의사들도 모두 떠났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환자들이 넘쳐났다.

'제대로 된 의사가 왔다'는 소문이 나면서 환자들이 밀려왔고 전국민 의료보험 시대가 열리면서 병원살림이 나아졌다. 못사는 동네의 가난한 근로자들 중에서는 손가락이나 팔다리가 짤린 환자가 적지 않았다. 접합수술을 기피하던 당시, 밤잠을 자지 않고 재접합 수술을 했다. 소문을 듣고 전국에서 헬기를 타고 오는 환자도 있었다.

재개발 붐으로 병원 주변의 가난한 사람들이 다시 외곽으로 밀려났다. 낡고 좁은 건물로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정부 융자금과 은행 빚을 내 지금 자리에 병원을 지었다. 청량리 역 앞에 병원을 짓는다는 말을 듣고 주변에서는 "망하려고 작정했느냐"고 말렸다. 기라성 같은 병원들이 즐비한 동네에서 어쩔 작정이냐는 걱정이었다. 그러나 "병원의 승패는 의료기술에 달렸다"며 제대로 된 병원을 세워보겠다는 의지가 그런 걱정이 기우임을 증명했다.

성심병원내 40여 명 의사 중 지금도 이 원장이 수술 칼을 제일 많이 든다. 병원이 커지며 벌이도 나아졌다. 의사 중 세금을 가장 많이 냈다고 국무총리상을 받기도 했다. 토요일이면 모교인 경희대 의대에 강의를 나간다. 마침 맏딸이 본과 2학년이라 딸 아이 앞에서 강의를 하려면 진땀이 난다고 한다.

달성 화원출신으로 경북고를 나왔다. 이 원장과 저녁을 먹는 자리에 마침 이 원장의 아버지가 찾아왔다. 이경희(李慶熙) 가야대 총장이다. 이 원장은 아예 생각하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이 병원을 시작할 때 도움을 주지 못한 걸 미안하게 여긴다.

서영관 논설위원 seou123@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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