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살아요-사랑의 송아지 기증 릴레이 첫 결실 맺어

입력 2005-04-28 08:46:11

"이 송아지가 커서 새끼를 낳으면 또 다른 낙농가에게 전달되고, 그 소가 또 새끼를 낳고…. '사랑의 소 릴레이 기증'은 영원히 이어질 겁니다.

언젠가는 우리가 키우는 모든 소가 초우량종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함께 가져 봅니다.

"

지난 2003년 경주시 강동면 호명낙농 대표 이종화(48)씨는 자신이 키우던 소 가운데 가장 우량종이 낳은 송아지 한 마리를 안강읍 사방리의 후배 김대규(27)씨에게 기증했다.

이씨는 "네가 이 소를 잘 키워 송아지를 치면 또 다른 사람에게 기증하라"고 주문했고 그 소가 커서 지난달 송아지를 낳으면서 새로 기증받을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한 낙농인의 자발적 송아지 무상기증을 통한 우량소 보급운동에 가속도가 붙고 있는 것이다.

◇'나눔 1호'와 '나눔 2호'

이 대표가 우량 송아지를 지역 낙농가들에게 보급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3년 3월. 1991년 경주 안강, 강동 들판을 물바다로 만든 글래디스 태풍으로 큰 피해를 입었던 이씨는 주변 이웃들의 도움으로 힘들게 2년여 만에 재기에 성공했다.

그리고 10년 만인 재작년. 그는 보은(報恩)의 뜻으로 우량 젖소 개량사업에 관심 많은 동료 농가들에게 자신의 최고 송아지 5마리를 매년 주기로 하고 '바비엠 쥬러이토'라는 아비소와 '호명 렌디버즈 231호'라는 어미소 사이에 태어난 족보 있는 우량종 '호명 버저이토'를 '나눔 1호'라는 별명까지 붙여 김씨에게 전달했다.

향후 5년간 매년 1마리의 우량 송아지를 이웃에 전달하겠다고 약속했던 이씨는 지난해에는 '호명 메디슨 아웃사이더 305호'를 안강읍 대동리 대동목장 정율락(45)씨에게 전했다.

'나눔 2호'다.

주변에 소문날 정도로 좋은 송아지여서 팔면 마리당 200만 원은 거뜬히 받을 소들을 선뜻 내준 이씨는 "우량 젖소를 확산시킬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진돗개보다 훨씬 더한 족보관리

"우량젖소 보급은 내게 주어진 소명"이라는 이씨가 나눠준 나눔 1호와 2호의 어미 젖소 '호명 렌디버즈 231호'와 '호명 힐탑'의 연간 산유량은 모두 1만8천㎏이 넘는다.

일반 젖소들의 생산량 7천㎏에 비하면 2.5배 이상의 값어치를 발휘하는 것. 이런 암소가 철저하게 검증된 수소의 정액을 받아 송아지를 낳고 그 송아지가 다시 우량 수소와 교배, 송아지를 낳으면 더욱 좋은 고능력소가 탄생하는 것은 불문가지.

송아지 릴레이 기증운동에 뜻을 함께한 이들은 그래서 족보관리도 엄격하다.

진돗개 족보관리도 철저하지만 우량소의 그것에 비할 바 아니다는 게 이들 낙농인들의 설명. 키, 유방의 크기와 상태, 다리 등 신체부위별 사이즈 등을 365일 내내 점검하는 절차를 거쳐 혈통등록된 소라야 비로소 인정을 받게 된다.

처음 기증을 시작한 이씨와 송아지를 넘겨받은 김씨, 정씨는 "우량종이 늘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 사는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나눔 3호의 탄생

지난달 나눔 1호를 키우던 김씨 농장에는 희비가 교차했다.

'나눔 1호'가 입식 2년여 만에 건강한 새끼 암소를 낳은 것. '새끼가 새끼를 낳아…'라며 시작했던 송아지 릴레이가 첫 결실을 맺었다.

하지만 어미소 나눔 1호가 산고를 못 견디고 시름시름 앓다 원기를 회복하지 못해 도태되는 슬픔도 겪었다.

김씨는 "아이를 잃은 것만큼 서운했다"면서도 "2세가 이렇게 건강하게 자라 위안을 얻는다"며 하루가 다르게 크는 송아지를 쓰다듬었다.

아직 혈통등록을 하지 않아 본명보다 '나눔 3호'라는 별명부터 먼저 얻은 송아지는 6월 초쯤 새 주인을 만나게 될 예정.

또 하나 기쁜 소식은 지난해 정씨 품에 안겼던 나눔 2호도 커서 조만간 수정을 앞둬 '나눔 4호' 탄생도 멀잖았다는 사실이다.

아버지로부터 가업을 이어받아 낙농 2세의 길을 걷는 김씨는 "축산이 대(代)를 이어 하는 기업이라면 저희 낙농인들의 우량 송아지 나눔운동도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면서 "이런 게 사람 사는 재미"라고 밝은 표정이었다.

또 이 운동의 창시자격인 이종화씨는 "우리들을 보면서 새롭게 낙농인의 꿈을 키우는 젊은이들이 늘었으면 좋겠다"면서 "내년에는 종자소를 받아 키울 사람을 전국에서 공모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경주에서 시작된 작은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될 날도 멀지 않은 듯했다.

경주·박정출기자 jcpark@imaeil.com사진: 2004년 4월 호명낙농 이종화 대표(오른쪽) 가 정율락 씨 에게 나

눔 2호를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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