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고사와 부모의 역할

입력 2005-04-25 11:20:40

지금 우리 사회는 비정상적인 입시 열기에 휩싸여 있다. 언론과 사설학원들이 부추기는 '고1 내신 전쟁'은 수많은 학생과 학부모의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할 지경에 이르렀다. 아무리 여기저기를 기웃거려도 뾰족한 해결책은 없다. 시험에 관한 어설픈 정보는 자녀를 불안하게 만들고 궁극적으로 학습 의욕을 잃게 할 수 있다. 가정은 자녀가 편안할 수 있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피로를 풀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 모두가 이성을 잃고 허둥댈수록 어떤 자세를 가지는 것이 자녀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불안감을 조성하지 말라

격려와 악담을 구별하지 못하는 부모, 아직까지도 꾸중과 간섭이 학생을 분발하게 하는 특효약으로 생각하는 부모가 많다. 부모나 교사의 별 생각 없는 말 한 마디가 어린 학생을 영원히 정신적 불구자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부모가 학생에게 조장하는 위기론은 일종의 폭력이다. 위기론의 무자비한 횡포 앞에서 대부분 힘없는 학생들은 위기 극복의 의지를 갖기보다는 불안감 때문에 무기력해지기가 쉽다. 위기론 속엔 가학성 잔인함이 깃들어 있다. 불안감은 인간의 모든 잠재 능력을 파괴하고 영혼을 병들게 한다. 어떤 경우든 자녀가 불안하게 해서는 안 된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칭찬과 격려의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힘이 솟아나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완벽을 강요하지 말라

A여고 K양은 중3 때까지 가장 잘 할 뿐만 아니라, 가장 재미있고 자신 있는 과목이 수학이었다. 고3인 지금은 가장 두렵고 성적이 좋지 않는 과목이 수학이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래로 어머니께서는 수학이 입시의 승패를 좌우한다며 학교 시험에서든 모의고사에서든 사소한 실수를 그냥 넘기는 일이 없었습니다. 수학 시험을 칠 때마다 실수하지 않고 다 맞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문제가 나오면 문제풀이에 몰두하기보다는 엄마 얼굴이 떠올라 저를 괴롭혔습니다. 그러다보니 풀 수 있는 문제도 놓치고 늘 계산이 틀리는 악순환이 되풀이되었습니다. 이제 수학 문제만 보면 머리가 아프고 정신이 아득합니다." 요즘 K양의 어머니는 모든 기대를 포기했다며 아예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는데, 이것 또한 엄청난 고통이고 이제 어느 과목이나 다 자신이 없다고 말한다. K양의 어머니는 수학 선생님이다.

▶바람직한 자세

예전에도 시험과 입시는 있었다. 대입 경쟁은 지금보다 훨씬 치열했다. 그렇다고 당시 부모들의 관심이 지금보다 적었던 것은 아니다. 예전에는 대부분 고교 생활을 한 인간이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당연히 겪어야하는 통과의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부모는 생업에 몰두하고 자녀는 학업을 비롯한 자신의 일을 스스로 알아서 했다. 그러나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자녀 수가 줄어들면서 모든 시간과 경제력을 자녀 교육에 집중적으로 쏟아붓게 되었고, 이와 함께 온갖 문제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 비정상적이고 비생산적인 교육 열기를 차분히 가라앉히며 삶을 전체적으로 생각하려고 애써야 한다. 가정은 가족 구성원이 정서적 안정 속에서 휴식을 취하며 내일을 위한 활력을 다시 얻게 되는 재충전의 원천이다. 지나친 간섭과 잔소리보다는 그냥 따뜻한 눈길로 모든 것이 이심전심으로 통할 수 있는 사랑의 보금자리가 되게 해야 한다.

시험기간 중에 부모는 지나간 시험 결과를 들먹이거나 남과 비교하여 자녀의 감정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 당일 시험 결과도 알아보려고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미 지나간 일을 두고 나무란다거나 아쉬운 태도를 보이면 학생에게 부담을 주게 되고 결국은 다음날 시험에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중간고사는 대개 3, 4일간 계속되기 때문에 학생의 건강관리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밤낮 주기를 바꾸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 낮잠은 1시간 이상 자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 좋다. 한두 과목을 망쳐도 기말고사에서 만회할 수 있다고 말해주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여유를 보여주어야 한다.

윤일현(송원학원 진학지도실장 ihny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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