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사 일방적 '교통영향평가' 부작용
18일 오후 수성구 범어1동 한 주택단지. 아파트, 빌라, 단독주택 등 300여 가구가 모여있는 이곳은 소위 '노른자위'라는 소문이 돌면서 지난해 11월쯤부터 6곳의 아파트 시행사업(민영주택건설사업)업체가 몰렸다. 이 중 ㄱ시행사가 지난달 말 시에 교통영향평가를 신청해 주민들이 들고 일어섰다. 주민들의 사전 동의를 받지 않은데다 자금력이나 과거 사업성과를 못 믿겠다며 일부 주민들이 ㄱ업체 배제를 구청에 요구하고 있다.
업체 측은 현행법상 교평에 주민동의 요건이 없고 이후 사업승인 등 후반작업 진행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 그러나 주민대표 김모씨는 "한 마디 말도 없이 내 집에 선을 긋고 땅을 내놓으라니 말이 되냐"며 교평을 빙자한 시행사의 일방적인 사업추진에 반발했다.
◇교평, 먼저 내면 임자(?)
교통영향평가를 둘러싼 잡음은 현행법상 사업시행자가 임의로 사업부지를 선정, 건축계획만 수립하면 토지소유자 동의 없이도 아파트 사업을 위한 교평 신청이 가능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한 재건축 관계자는 "아파트 시행사업은 '땅에 먼저 그림 그리는 쪽이 임자'라는 말까지 공공연히 나돈다"며 "교평만 따내면 경쟁업체에 비해 절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제도상 맹점 때문에 뒤늦게 재건축 사실을 안 주민들의 반발을 사거나 단일 사업부지에 여러 시행업체가 난립, 주민들 간에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일부에선 주민들로부터 토지 매매 동의만 얻어내 시행사에 넘기는 '대토(代土)업자'들까지 판쳐 땅값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대구시에 따르면 올 들어 교통영향평가 신청이 수성구를 중심으로 시내 전역에서 지난해에 비해 2배가량 늘었는데다 재건축 사업이 성사된 것처럼 '축 ○○동 교통영향 평가 통과'라는 현수막이 동네마다 걸려 바람을 잡고 있다.한 시행사 관계자는 "교평이 통과된 후에도 지가가 50% 이상 뛰어 계약금, 중도금을 지불하지 못하거나 시공사를 구하지 못해 사업이 무산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매입 전문 용역업체나 사업능력이 없으면서도 교평만 우선 통과시켜 시행사에 웃돈을 받고 넘기는 유사 시행사도 난립하고 있다.시내 한 재개발 업체 관계자는 "일부 민영주택 사업지에서는 90% 주민동의를 얻어 땅값의 3~5%가량을 수수료로 받고 시행사에 넘기는 업자들이 따로 있다"고 했다.
범어동 주민 전모씨는 "사무실도 없어 동네 복덕방 수준에도 못 미치는 시행사도 상당수"라고 했고, 한 구청 관계자는 "상대 시행사의 작업을 방해하기 위해 밤새 교평 행정예고문을 모조리 뜯어 가는 일도 있다"며 업체 난립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교평, 문턱 높여야
시는 "사업여력이 없는 시행사를 가려내기 위해 교평 신청 단계에서 주민동의를 요구한다면 어느 토지 소유자가 최소한의 사업계획도 없는 상황에서 동의를 해 주겠느냐"며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그러나 교평 통과는 사실상 우선 사업권으로 통하고 있다.
현행법상 동일 사업부지에 대한 서로 다른 시행사의 교평 신청이 가능하지만 후발 사업자에 대한 현실적인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한 업체가 명의만 달리 해 다른 내용의 평가서를 제출하는 폐단을 막기 위한 취지이지만 후발 업체에 교평과 사업승인을 함께 받도록 해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
수성구청 관계자는 "이는 결국 교평의 프리미엄만 부추기는 꼴"이라며 "시행사 난립을 막는 차원에서 교평신청 요건에 최소한 10~20% 이상의 주민동의를 얻도록 하는 등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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