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 꽃 연분홍빛 '대향연'

입력 2005-04-13 11:09:22

"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히 묏등마다 그날 스러져간 젊음 같은 꽃사태가 맺혔던 한이 터지듯 여울여울 붉었네…"

4'19를 며칠 앞두고 이영도 시인의 시가 생각나는 것은 진달래가 당시 희생된 젊은이들을 닮았기 때문이다. 이뿐일까. 화사하면서도 슬픈 진달래는 늘 우리 가슴 속에 남아 있었다. 영화 '남부군'에서 산으로 쫓겨간 빨치산들이 배고픔에 허덕지덕 따먹던 꽃이다. 어린 시절, 시큼한 맛에도 한 움큼씩이나 먹었던 고향의 꽃이다. 그래서 진달래를 좇아가는 산행은 다른 꽃처럼 화려하지 못하다.

지금 온 산은 진달래 천지다. 매화와 산수유, 목련, 개나리가 피고 질 때까지도 가고 오는 계절을 감지하지 못했다면 진달래가 있는 산으로 가보자. 하긴 우리나라 산 치고 진달래가 없는 산이 어디 있으랴. 높지않은 야산의 진달래는 비슬산이나 화왕산 정상의 진달래처럼 무리를 지어 붉은 빛깔을 과시하지 않는다. 한 그루가 청승맞아 외롭다 싶으면 저쪽에선 몇그루가 모여 색깔을 뽐낸다. 일부러 꽃구경을 나선 것도 아닌데 온 산을 덮고는 산행객을 맞는다. 이리저리 진달래 꽃 속을 헤집고 걸어보자. 길이 없어도 괜찮다. 진달래 산행은 느긋하게 올라야 한다. 여유있게 걷는 봄산행에 딱 맞다.

잎보다 꽃송이를 먼저 틔워내는 급한 성깔을 지녔지만 아직 비슬산이나 화왕산 정상의 꽃잎까지는 틔우지 못했다. 산자락에 머물며 숨을 고르는 중이다. 오는 20일 쯤이면 화왕산이나 비슬산 정상은 진달래 꽃사태를 일으킨다. 그때쯤이면 정상은 한쪽 산비탈이 무너져 내릴 만큼 온통 붉은빛을 머금는다.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면 가까운 산으로 갈 일이다. 비슬산 자락은 지금 진달래 세상이다.

글·박운석기자 stoneax@imaeil.com

사진·박노익기자 noik@imaeil.com

사진: 달성군 옥포면 용연사 입구 반송리 부근 야산의 진달래. 야트막한 야산이라 등산로가 없어도 진달래꽃 속을 헤치며 걸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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