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옥입니다-할매

입력 2005-03-30 11:35:16

유머 시리즈 중 '할매 시리즈'는 듣기 민망한 일부 우스개들과는 달리 들을 때마다 재미있다. 방학이 되어 서울 손자가 할머니 집에 놀러왔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기 위해 자꾸만 왔다갔다 하는 할머니 때문에 아이들은 TV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서울손자가 말했다. "할머니, 자꾸 왔다갔다 하시면 TV를 못보잖아요. 가만히 좀 앉아계세요". 그래도 여전히 왔다갔다 하던 할머니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경상도 손자가 "할매!"하고 큰 소리로 외쳤기 때문이었다.

할머니가 식탁을 차리는데 반찬을 덜어낸 숟가락을 입으로 쭉 빤 뒤 다시 다른 반찬을 덜곤 했다. 보다 못한 서울 손자가 "할머니, 숟가락을 입에 넣으면 더럽잖아요. 숟가락을 입에 넣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그래도 계속 숟가락을 입에 넣던 할머니, 경상도 손자의 "쫌!" 한마디엔 그만 뚝 멈추고 말았다.

'할머니'의 경상도 버전인 '할매'가 전국적인 유행어가 됐다. '알라(아기)', '돌리도(돌려다오)' 등 개그 프로그램을 통해 유명세를 탄 몇몇 경상도 사투리와 함께 '할매'의 인기도 만만찮다. 게다가 최근 다섯 할매들의 기상천외한 엽기 소동을 다룬 코믹 영화 '마파도' 역시 할매 바람에 단단히 한몫 한다. 우연히 섬에 찾아든 팔팔하게 젊은 두 건달을 땡전 한 푼 안 주고 무지막지하게 부려먹는, 조폭보다 더 무서운 할매들이 목하 전국을 평정하고 있는 것이다.

확실히 요즘의 매스 미디어가 만들어 내는 할매들은 우리네 가슴 속에, 추억 속에 남아있는 할매들과는 사뭇 다르다. 국제적으로도 유명한 '아지매' 이상으로 희화화된 감이 없지 않다. "내 손은 약손"이라며 아픈 배를 쓰다듬어 주시던 할매, 애써 농사지은 씨알 굵은 감자를 한 보따리 보내주시던 옛 초등학교 교과서 속의 할머니, 치맛자락에 침을 묻혀 꼬질꼬질한 손자손녀 얼굴을 닦아주시던 그런 할매들의 모습이 문득 그립다.

형제 많던 시절, 할머니'할아버지 무릎에서 자란 아이들은 자연히 노인에 대한 이해와 공경심을 키울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 청소년들 중엔 노인 근처에 아예 가지도 않으려는 경우도 종종 본다. 훗날 자기 부모에게도 그러할까, 괜스레 걱정되는 것이 단순한 기우라면 좋으련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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