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광장-표절과 우리의 교육현실

입력 2005-03-30 08:54:45

새 학기가 시작돼 열심히 강의실을 오가는 학생들을 보면서, 미국에 있을 때 겪었던 한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미국에 방문교수로 오신 한국인 교수님이 어느 날 저녁 물어볼 것이 있다며 집으로 찾아오셨다.

그분이 궁금하게 생각한 내용은 '표절'에 관한 것이었다.

추수감사절에 대해서 조사해오라는 초등학생인 큰 아이의 리포트 과제물을 대신해주었는데, 담임선생님이 "표절이 의심된다"라는 코멘트를 해서 리포트를 돌려주었다는 것이었다.

리포트를 작성하기 위해 인터넷 백과사전에서 추수감사절에 관한 부분을 일부 그대로 복사, 편집한 후 이를 출력해 큰 아이에게 제출하도록 한 것 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었다는 것이 그분의 말씀이었다.

자료출처도 밝혀놓았는데, 왜 그것이 표절이고, 초등학생 리포트 과제가 무슨 논문도 아닌데 그런 것을 가지고 표절 운운하는지 모르겠으며, 이것이 그렇게 큰 문제가 되느냐는 것이 그분이 필자에게 했던 불만 섞인 질문이었다.

필자는 황당해 하는 그 교수님에게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는 필자가 미국에 왔을 때, 학과선배가 해 준 것이었다.

한국 유학생이 기말 리포트를 작성하면서 학점을 잘 받아보겠다는 욕심에 몇 편의 논문을 가지고 일명 '짜깁기'를 했다고 한다.

그 수업의 담당교수가 리포트를 읽다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조교한테 의심이 가는 논문과 대조해보라고 지시했고, 조교는 이 리포트가 인용 없이 몇 편의 논문을 짜깁기하여 작성되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한다.

담당교수는 그를 학과 징계위원회에 회부했고, 징계위원회는 논란 끝에 그를 제적시켜 그 유학생은 꿈을 접고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다.

필자는 이 서글픈 이야기를 그날 그 방문교수님에게 해주었다.

이 이야기를 듣자, 초등학교의 과제인데, 무슨 문제가 되냐고 하셨던 그분의 태도는 이내 심각해지셨다.

그렇다면, 표절이라는 혐의(?)를 받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했어야 했는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물어보시는 그분에게 몇 가지 사항을 말씀드렸다.

가령, 비록 자료출처를 제시하였다고 하더라도 자료의 일부를 그대로 인용하는 것은 문제가 되며, 인용을 하려면 그 부분의 내용을 인용자 자신의 말로 바꾸어서 작성해야 한다는 점과, 만약 일부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고 싶다면 그 문장의 앞뒤에 인용부호인 따옴표를 붙여주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미국의 학생들은 인용하고 싶은 진술이 있다면, 이 진술을 자신들의 말로 바꾸어 표현하는 훈련을 받는다는 사실을 덧붙여 말씀드렸다

그러자 이내 그 교수님은 큰 아이의 담임선생이 어떻게 리포트의 표절 여부를 간파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궁금해 하셨다.

백과사전에서 사용되는 단어나 논리전개의 수준이 초등학생의 그것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나기 때문에 그 리포트가 베낀 것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과, 무엇보다도 미국의 경우 한 교사가 담당하는 학생이 10명 정도밖에 되지 않아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물들을 세심하게 읽어볼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점을 말씀드렸다.

그제서야 그 교수님은 궁금증이 풀렸다.

개강한 지 한 달이 지난 지금쯤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수업과제물로 리포트를 작성하느라 분주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리포트를 작성하기 위해, 아마도 많은 학생이 네이버나 야후와 같은 인터넷 지식검색사이트에 들어가 리포트 주제를 다룬 문서 몇 개를 찾아내 별 생각 없이 짜깁기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교수님들은 한 학기에 최소한 100편 이상의 리포트를 읽고 평가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오래전에 겪었던 이 에피소드가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 이유는 표절에 대해 눈을 감게 하는 우리의 이런 열악한 교육현실 때문이 아닌가 싶다.안용흔 대구가톨릭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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