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설 연휴 때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가 TV로 방영돼 큰 인기를 얻었다. 1970년대 후반의 학교를 무대로 한 이 영화는 그 시대를 반추하면서 추억의 미학에 후끈 불을 지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획일화와 복종을 강요하는 권위주의에 좌절하고 분노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공부 못하면 사람 취급을 못 받는 '성적 제일주의'와 '성장 우선주의'라는 가치관이 도사리고 있었다. 사실 당시 부모들은 유독 일류 대학 진학이 출세 보장이라는 믿음으로 몸과 마음을 던지던 시절이 아니었던가.
◇ 그 결과 우리는 '자식만은 잘 되기를 바라는'부모의 희생과 교육열에 힘입어 성장을 앞당기고,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는지 모른다. 그러나 '점수'로 미래를 보장받으려는 욕망은 적지 않은 폐해도 낳고 있다. 더구나 그때 교육 받은 세대가 '학벌 대물림'을 하려는 풍조도 사실인 것 같다. 학벌이 돈을 만들고, 돈은 다시 학벌을 낳는 악순환은 그 때문이다.
◇ '능력 위주 평가'라는 말이 나온 지는 오래나 우리 사회는 여전히 학벌과 학력 차별의 벽이 낮아지지 않고 있다. 명문 대학이나 4년제 대학을 나오지 못해 직장에서 홀대받는가 하면, 학벌 하나 만으로 출세 가도를 달리는 경우를 흔히 목격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가짜 학위나 졸업장을 만들어주는 범죄의 빈발도 이 같은 사회상의 반영에 다름 아닐 게다.
◇ 돈을 주고받으며 석'박사 학위 논문을 써주거나 가짜 대학 졸업장을 위조했다가 덜미가 잡힌 사건들이 잇따르고 있다. 얼마 전 가짜 박사 학위 논문 물의에 이어 최근 서울에서는 대학 졸업증명서 위조 전문 사이트 관계자 2명이 구속되고, 의뢰자 10여 명이 적발됐다고 한다. '직장에서 무시당하기 싫어, 처갓집을 속이려고, 등록금 탕진 뒷수습을 하기 위해' 등이 그 이유들이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 '짧은 학력이 가는 곳마다 발목을 잡는 사회'는 끊임없이 '가짜'를 부르는 '웃지 못 할 비극'을 면하기 어렵다. 수능 부정과 과잉 교육열, 가짜 졸업장과 대신 써준 학위논문을 질책하고 벌하는 것도 허망한 진단일는지 모를 일이다. 학벌보다 능력이 우선하는 사회를 만들려면 서열 중심의 교육 구조가 만들어내는 병폐들을 제거하고, 학연을 매개로 한 패거리 짓기와 줄 서기부터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이태수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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