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자락에 사는 지인으로부터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았다. 밥상 위의 간소한 음식들 중 눈길을 끄는 것은 커다란 접시에 수북히 담긴 생미나리였다. 근처 비닐하우스 미나리꽝에서 산 청정 미나리라면서 집주인은 "이걸 먹으면 간이 벙글벙글 웃는답디다"라고 했다. 싱싱한 미나리의 향과 사각거리며 씹히는 맛은 과연 일품이었다.
예로부터 봄미나리는 보약으로 쳤다. 통통하게 살찐 미나리는 생나물로도 좋고, 삶아 무쳐도 맛있다. 살짝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미나리강회는 춘곤증으로 깔깔해진 입맛을 돋우고,뜨끈한 미나리전은 군것질거리로 그만이다.
예전엔 미나리꽝을 어디서나 쉬 볼 수 있었다. 무논의 미나리꽝에선 봄부터 가을까지 끝없이 베어내도 금방 또 자라났고, 산 아래 물기 있는 곳이나 실개천 부근엔 앙바틈한 돌미나리들이 군락을 이루었다. 또 동네 우물가, 아낙들이 허드렛물을 버리는 곳에도 으레 미나리들이 자라고 있었다.
작고한 향토 출신 한 성악가의 미나리꽝에 얽힌 에피소드를 들은 적 있다. 술 몇 잔에 흥취 도도해진 그 양반이 미나리꽝을 보고는 그만 그 속에 들어가 벌렁 드러누워버린 것이다. 그리곤 양복이 젖는 것도 아랑곳 없이 하늘을 쳐다보며 노래를 부르며 마냥 행복해 했다는 것이다. 산들바람에 일렁이는 초록 빛 미나리 물결이 예술가의 흥을 한껏 건드렸던가 보다.
요즘에사 깨끗한 물로 키우는 청정미나리가 인기지만 원래 미나리는 주로 더러운 물에서 키웠다. 바로 그것이 생활의 지혜였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생물학적 산소요구량(BOD) 400ppm 이상의 오염된 물이 있는 1평 정도 땅에 미나리 뿌리 300g을 심고 두 달이 지난뒤 10ppm 이하로 수질이 맑아졌다 한다. 미나리의 정화력이 그만큼 뛰어나다.
뻘 속에 뿌리를 두어도 향기로운 꽃을 피우는 연(蓮)처럼 미나리 또한 더러운 곳을 맑히고 안으로 향을 품는다. 거액 공천헌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여부가 주목되는 한 여성 국회의원이 청렴 서명서를 들고 웃는 모습이 쓴 웃음을 짓게 한다. 혼자 정의로운 척 큰소리 치다 부패혐의가 드러나면 어색하게 억지웃음 짓는 정치인들, 이젠 정말 노(No)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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