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철 원장은 어디를 봐도 나무랄 데 없는 신사이다. 늘 웃음 띤 얼굴에 말투도 조용조용한 분이, 정작 지난해 7월 대구경북연구원장에 부임하고는 연구원을 시쳇말로 팽팽 돌아가게 변화시켰다. 지금 대구'경북에서 가장 활기찬 곳이 바로 연구원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포항에서 태어나 경북중학교까지 다녔지만 그 후 서울고―서울대―건설교통부 차관보―국토개발연구원장―인천발전연구원장―인천대 총장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수도권에서 보낸 분이다. 몇 년 전 영남대학교에서 겸임교수를 몇 개월 한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곳 사람이었다고 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지금은 누구보다도 더 이 지역을 위해 애정을 쏟고 있다.
지난해 6월 대구시 투자유치단을 맡은 박형도 단장은 단정한 외모만큼 일처리도 깔끔하다. 수년간 애물단지였던 구지지방산업단지 30만 평을 달성2차산업단지로 개명하더니 완전 분양해버렸다. 물론 박 단장 혼자의 공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했다는 데 딴죽 걸 사람은 없다. 그도 이곳 사람은 아니다. 서울 출생, 삼성SDI에서 20년간 근무하면서 미국, 멕시코에는 오래 있었지만 대구는 처음이었다. 대구 발전에 박차를 가하는 박 단장의 열정은 토박이 못지않다.
정규석 원장 역시 56세에 대구'경북에 왔다. 대구경북과학기술연구원장인데 충남 예산 출생에 서울대, 미국 UC 버클리, 시카고대학을 거쳐 미국 AT&T 벨 연구소 매니저에 SK텔레콤 중앙연구원장, 데이콤 사장, LG전자 사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으니 원장이란 자리를 무슨 감투로 알고온 건 아니다. 연구원 위상이나 역할에서부터 대구와 경북의 협력방안, 연구원 자체를 달가워하지 않는 '서울' 사람들 구슬리기까지 정 원장에게 어디 쉬운 일이 하나라도 있을까 싶기 때문에 더욱 그의 대구행 선택이 두드러져 보인다.
그 무슨 공익광고처럼 긍정의 힘을 믿고 싶다. 대구'경북이 이제 오랜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고. 그것이 외지사람 덕분이라는 건 아니다. 되레 그 반대다. 이만큼 폐쇄적인 곳도 드물다는 얘기를 싫도록 들어온 게 대구'경북이다. 그런데 지금 어떤가? '외지사람'을 모셔와서 그분들의 지혜와 경험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외지사람이 들어와서 바뀐 게 아니고 그분들을 받아들일 만큼 대구'경북이 바뀐 것이다.
"나 자신은 한 게 없다. 대구'경북은 거의 모든 게 준비돼 있는 곳이다. 주거환경, 도시 인프라, 인적 자원, 기후까지 모든 면에서 이만한 곳도 드물다. 대구'경북은 지금 잘해 보려고, 변해 보려고 애쓰고 있다. 노래가사처럼, 손 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봉선화처럼…. 나는 단지 살짝 터치한 것뿐이다"라는 홍철 원장의 말처럼 말이다.
우리도 잘해왔다. 한국델파이 지기철 사장을 보자. 2000년 대우자동차가 부도나면서 납품대금 2천300억 원을 떼였다. 부도는 시간문제였다. 지 사장은 고민했다. 회사를 부도낼 것인가, 아니면 죽을 힘을 다해 끌고 갈 것인가. 당시 상식으로는 당연히 부도를 내야 했다. 그러나 지 사장은 부도내서 남의 돈 떼먹는 대신 사력을 다해 회사를 재건하는 몇 %도 안 되는 희망을 택했다. 다행히 기술이 있었고 유보금이 있었다. 협력업체들이 도와주었고 구조조정도 감수했다. 부도위기 4년 만인 지난해 한국델파이는 매출 8천500억 원에 흑자 500억 원을 올렸다. 지 사장은 이렇게 말한다.
"앞으로 5년 후 한국 차부품 산업의 미래를 확신할 수 없다. 지금 대구'경북에서 차부품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12.3%나 되지만 그 미래 역시 장담하기 어렵다. 그러나 지금 내게 있어 확실한 명제 하나는 '협력업체 직원과 그 식구까지 모두 2만 명에 이르는 한국델파이 가족만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각오 아래 오늘 우리는 내일을 준비하고 있다."
지역의 미래를 준비하는 분들이 너무나 많다. 그 사명감에 숙연해질 때도 많다. 그래서 '손 대면 톡 하고 터질' 수 있게 나도 내부에서부터 꽃봉을 준비하자는 의욕이 난다. 경제가 살아날 기미를 보인다고 한다. 나라와 지역 발전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가장이라면 이 정도는 약속해 보자, "내 가족만은 내가 먹여 살린다"라고. 누가 아는가! 내 가족 하나 먹여 살리려 했는데 대박 터져서 주위 많은 분들의 살림살이까지 확 펴질지.
이상훈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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