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소리 없는 대재앙'

입력 2005-03-10 11:38:25

지난달 타계한 희곡작가 아서 밀러가 쓴 '어느 세일즈맨의 죽음'은 미국에서 손꼽히는 걸작이며, 연극과 영화로 지구촌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었다. 주인공 윌리 로만은 오랜 세월 세일즈맨으로 근무한 회사에서 해고당하고 두 아들마저 타락하자 인생에 회의를 느낀다. 마지막으로 장남에게 보험금이라도 물려주기 위해 자동차를 과속으로 몰아 자살한다. 그런데 오늘의 우리 사회는 이런 비극을 훨씬 넘어서는 악질 보험 사기극들이 보험업계에 활개를 치고 있어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 미국에서는 보험 사기 범죄를 '소리 없는 대재앙'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런 범죄가 극성을 부리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그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이 대재앙이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10명 중 9명이 1개 이상 보험에 가입해 세계 6위의 '보험 대국'으로 자리매김한 우리나라도 그 대재앙과 직면하는 실정이다.

◇ 금융감독원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보험 사기 적발 건수는 1만6천513건이다. 2003년보다 77.3%나 늘어났다. 사기로 타낸 보험금도 무려 112.9%가 늘어난 1천290억 원에 이르렀다. 이런 사기 사건에 연루된 사람도 5천470명으로 1년 사이에 64.6% 증가했다. 청소년 가담은 전체의 8.3%나 전년에 비해서는 182%나 늘어나 연소화 경향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같은 범죄가 조직폭력배들이 개입하는 등 갈수록 조직화'기업화되고, 지능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근래에는 보험사 관련자 규모는 평균 20~30명에서 최대 200여명에 이를 정도다. 보험 범죄 구성원도 점차 다양해지는 추세다. 심지어 병'의원의 경우 의사'원무과장'간호사 등이 허위 입원과 과잉 진료, 서류 조작을 통해 거액의 의료비를 받아내는 등 사기 수법도 각양각색이다.

◇ 대구에서 최근 또 교통사고를 유발하거나 발생하지 않은 사고를 허위 신고하는 방법으로 보험금 1억여 원을 타낸 보험사기단이 경찰에 붙잡혔다. 당국은 이런 사기극을 철저히 색출해 일벌백계의 조치를 해야 한다. 돈에 눈이 먼 범죄 유혹으로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부르는 일은 반드시 사라져야만 한다. 지금 우리에게는 비뚤어지고 일그러진 가치관을 바로 세우는 게 무엇보다 시급한 일인 것 같다.

이태수 논설주간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