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스타를 타고 런던에서 벨기에로 넘어오니 창밖 세상이 온통 눈천지다. 하얀색 도화지를 창문에 붙여 놓은 듯 새하얀 세상이 감탄사를 내지르게 한다.
이제 본격적인 유럽 대륙이다. 코스 요리에 빗대면 영국은 전채요리이고 이제부터가 메인 요리인 셈이다. 벨기에 역에 내려 그 유명하다는 오줌싸개 소년 동상에 가서 잠깐 사진을 찍고는 바로 네덜란드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네덜란드. 바다보다 땅이 낮고 거리에 운하가 흐르며 일기를 열심히 써서 두고두고 칭찬받는 안네프랑크가 있다. 또 우리나라 국가대표 축구팀과 함께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히딩크의 고향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튤립이 먼저 떠오르는 나라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꽃시장이 하나 있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물 위에 떠 있는 암스테르담 최대의 꽃시장이라고 하는데 막상 가 보니 운하 쪽은 추워서 장사를 안 하고 길 쪽으로 난 가게에서 꽃이랑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바람이 불고 기온도 영하로 내려가는 추운 날씨였지만 화려한 꽃들이 봄나라 정원을 그려내는 것 같아 마음만은 포근하다. 튤립 50송이가 8.5유로(약 1만 원 상당)다. 한국에서는 10송이만 사도 만 원은 할 텐데. 쩝~.
영국에서도 그런 생각을 하긴 했지만 유럽 사람들이 꽃을 즐겨 사는 데는 아마 가격이 다른 곳에 비해 싼 것이 큰 이유인 것 같다. 우리도 꽃이 지금보다 조금 싸다면 퇴근길에, 장 보는 길에 부담없이 한 묶음 사다가 거실에 꽂아두지 않을까. 두부 한 모가 2천 원인데 꽃 한 다발이 만 원이나 한다면 선뜻 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꽃은 생활의 여유를 보여준다. 먹고 살만 할 때 꽃도 사고 하지, 당장 살기 어려운데 꽃을 즐길 여유는 없다. 네덜란드 꽃시장에서 유럽인들의 넉넉한 여유를 다시 한번 느낀다. 시장에는 이 나라의 국화답게 단연 튤립이 많았지만 그 밖의 예쁜 꽃들도 정신 차릴 수 없을 정도로 가득했다.
초등학교 실과 시간에 튤립, 히아신스가 알뿌리 식물이란 걸 배운 기억이 난다. 양파같이 생긴 여러 가지 알뿌리들을 실컷 구경하고 알록달록 어여쁜 꽃과 기념품들을 둘러보았다. 엄청난 영국 물가에 비해 이곳은 쇼핑하기가 조금은 만만했다.
야간열차(나이트라인)을 타고 독일로 왔다. 처음 타는 밤 기차여서 잔뜩 긴장했는데 다행히 우리와 같이 배낭여행 중인 한국인 아가씨 셋을 만나 조금은 안심되었다. 우리랑 같은 칸에 탄 독일 사람들. 술을 즐기는 나라의 사람들 아니랄까봐 벌써 얼큰히 취해 있는 표정이다. 짐만 놓고는 다시 자기네끼리 또 한잔하러 나간다.
숙소에 짐을 놓자마자 뮌헨 시내로 뛰쳐나왔다. 마리엔 광장 쪽으로 쭉 걸어가니 우리가 들르기로 한 빅투아리엔 시장이 나왔다. 독일 사람들이 맘 먹고 제대로 된 요리를 해 먹으려면 이곳에 와서 장을 본단다. 입구부터 소시지를 파는 정육점 가게들이 쭉 늘어서 있다.
소시지는 그 종류만도 숱한데 여기서는 그냥 부르스트(Wurst)라고 부른다. 매콤한 맛도 있고 커리맛을 내는 것도 있다. 가게마다 주렁주렁 걸린 소시지가 참 이색적이다. 우리가 삼겹살을 소주 안주로 즐겨먹듯 독일인들은 맥주 안주로 소시지를 주로 먹는다. 길거리 가게에서 하나 사서 맛을 봤다. 양념된 소시지를 프라이팬에 구워 기름기를 뺀 다음 먹는다는데 그래도 느끼한 맛은 여전했다. 햄이나 소시지를 좋아하는 딸은 쩝쩝거리며 잘도 먹는다.
가게에서 물건을 사면 대부분 플라스틱 백(비닐봉지)에 담아주기보다는 손님들이 가져온 천 주머니에 담아가는 풍경이 눈에 많이 띄었다. 아예 가게에 천으로 된 시장바구니가 걸려 있고 팔기도 한다. 가격은 1.4유로(약 2천 원 상당). 비닐을 덜 사용해 환경을 지키려는 모습이 무척 인상깊다. 나중에 보니 동네 슈퍼에도 이런 천 주머니가 걸려 있었다. 우리도 요즘은 점점 비닐을 덜 사용하는 추세이지만 아직 이 정도는 아닌데. 독일 주부들의 철저한 모습이 엿보인다.
계속 돌다 보니 간이식당들이 모여 있는 곳에 이르렀다. 그곳을 문득 둘러보다 깜짝 놀랄 만한 것을 발견했다. 바로 샌드위치 속에 든 내용물이었다. 으악! 저걸 어떻게 먹나? 정어리 같은 생선이 빵 사이에 턱 하니 끼워져 있는 게 아닌가. 그것도 날생선이다. 갈치같이 허연 비늘 생선도 보이고 꽁치같이 등푸른 생선도 있다. 보기만 해도 비린내가 온몸을 감싸는 것 같아 도저히 먹어볼 용기가 나질 않았다. 우리도 과메기를 미역에 싸서 먹긴 하지만 이건 좀 보기에도 역했다. 독일 북쪽 바닷가 근처 사람들이 즐겨먹는 음식이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설명듣고 알았다.
흑미가 들어간 볶음밥 같은 것과 감자볶음, 흰살 생선 양념볶음을 먹었는데 향신료 냄새가 조금 강하긴 해도 먹을 만했다. 우리 앞쪽의 할아버지는 이런 간이식당에서도 우아하게 화이트 와인 한 잔 시켜 놓았다. 마치 우리네 시장에서 국밥 한 그릇과 막걸리 한 잔을 함께 드시는 것처럼…. 그래서 세상사는 모습은 다 비슷비슷한가 보다.
글·사진 도현주(주부·논술강사)
사진: 네덜란드의 대표적 기념품 나막신. 오른쪽은 나무로 만든 튤립이다. 생화를 사갈 수 없는 관광객들을 위한 배려이다.(사진 위쪽) 암스테르담 최대의 꽃시장에 들른 도현주씨. 예쁜 꽃들에 정신이 팔려 시간 가는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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