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지우기'

입력 2005-03-07 12:08:44

얼마 전 광화문에 걸린 고 박정희 대통령의 현판 휘호를 떼내겠다는 논란의 시비가 채 가라앉기도 전에 이번에는 윤봉길 의사를 모신 충의사(忠義祠) 현판이 도끼에 쪼개지는 불상사가 빚어졌다.

거기다 국가원수를 시해한 비극적인 10'26암살사건을 블랙 코미디 영화로 만들어 맞붙은 소송시비도 삭제소송에서 손배소송으로 점점 더 번져가고 있다.

가뜩이나 생활고에 지쳐있는 다수 국민들로서는 사회 곳곳에서 기상천외한 돌출행동으로 빚어지는 속칭 '박정희 지우기' 시비가 봄날의 먼지 바람처럼 신경 건드리고 성가시게 느껴질 뿐이다.

왜들 죽은 지 25년이 지난 옛 지도자에 대해 긍정적이고 좋은 치적은 지우개로 박박 지우고 60년도 더 지난 일제 때의 행적을 끌어내다 부정적인 덧칠을 씌우려들까.

정작 박정희 시대의 수난자들이었던 YS나 DJ그룹이 집권했을 때도 이처럼 유별나게 한맺힌 듯 설치지는 않았는데 소위 개혁 정부에 들어서는 무슨 이유로 극성스럽고 극단적 행위와 말들이 판을 치는지 알 수가 없다.

이런 의문에 대한 해답의 하나가 될지 모르지만 루스벨트는 당시 진보당의 광신적 정치형태를 비판하면서 이렇게 말했었다. '모든 개혁운동에는 광(狂)적인 패거리가 있다.'

멀쩡한 현판을 뜯어내고 아무런 역사적 사료 관계가 없는 곳에서 이 글자 저 글자 떼모은 집자(集字)현판을 바꿔 달겠다는 거나 독립의사의 사당 현판을 멋대로 뜯어내 도끼질을 하고 기념사진을 찍는 범법 행위가 공공연히 저질러질 수 있는 사회분위기는 분명 루스벨트의 '광적'이란 말을 떠올리게 하는 비정상적 현상이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박정희 지우기'시비에 맞선 그룹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눠 볼 수 있다.유신 독재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7% 가까운 국민들이 박정희에 대해 품고 있는 인기와 향수가 질투나고, 두렵고, 배아픈 세력, 그리고 '꼴통보수'로 몰리면서도 박정희를 두둔하고 치적을 기리며 기념관이니 도서관을 지어보려고 맨손으로 뛰어다니는 그룹과 그들에게 푼푼이 기금을 보내주고 있는 사람들이다.

박정희 기념관은 8년 전 당시 김대중 대통령 후보가 구미의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했을 때 구미 시민앞에서 공약했던 사항이다. 그게 국민정부와 참여정부에 이어오면서 공사재개 승인을 질질 끌며 세월만 미루고 있다.

정부의 분위기가 그런 탓인지 기념관 건립 사업회에는 아직 1만6천여 명만이 기부금을 보내왔을 뿐이다. 여론조사 같은 데서는 70% 가까운 사람들이 박정희를 경제입국의 인물로 꼽으면서도 막상 기부금 후원자 명단에 이름 내는 사람은 3천분지 1도 안된다는 얘기다.

모순돼 보이는 이런 현상은 기념사업회 후원 절차를 몰라서인지, 정권이 지원을 달가워하지 않는 듯해 보이니까 지레 후원자 명단에 이름을 안 드러내려 하는 건지는 알 수 없다.

어쨌거나 현판 쪼개기 같은 극렬한 이벤트성 행동을 보고서 '아, 박정희는 친일파구나. 그러니 지금부터는 경제입국의 영웅 박정희가 아닌 친일 독재자 박정희로 낙인 찍고 마음 속에서 지워 버리자'고 작심할 국민이 늘어날 거라고는 미안하지만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식의 박정희 지우기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꼭히 '지우기'를 성공하고 싶은 집단이있다면 도끼만행 대신 거꾸로 '부메랑 효과 이론'같은 거나 한 번쯤 생각해 보라. 이 고전적 여론선전 이론은 예를 들어 박정희는 나쁜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선전하고 싶을 때 선전을 듣는 수용자(국민)들이 원래부터 품고있는 박정희에 대한 생각이나 메시지와 너무 동떨어지는 강한 메시지(도끼질 같은)를 보낼경우 오히려 그런 친일독재 선전은 믿지 않고 거꾸로 그런 선동 선전을 하는 쪽에 불신이 돌아가게 된다는 실험된 이론이다.

따라서 참여정부 경우 공연히 과격세력의 돌출행위들에 의한 부메랑을 얻어 맞는 오해나 피해를 씻기 위해서라도 주변에서 빚어지는 극단적 '박정희 지우기 바람'을 견제하고 중도적 평가와 함께 공약으로 약속했던 박정희 기념관 사업 같은 거나 더 앞장서서 밀어주고 순수한 비정치적 박정희 테마공원을 만들고 싶어하는 구미시장에게 예산을 지원해주는 식의 큰 가슴을 열어 보일 필요가 있다.

박정희의 옛 후광(後光)을 끄고 애써 지우기보다는 그를 있는 그대로 두면서 그가 이뤘던 빛보다 더 강력한 빛과 더 큰 신화를 창조해 내보인다면 박정희는 저절로 뛰어넘을 수 있다. 그런 방식의 박정희 극복이야말로 이 나라를 갈등 없이 박정희 시대보다 더 큰나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최선의 길이다.

이제 지우려 할수록 더 선명해지는 박정희 지우기의 구시대적 지우개는 내던져 버리고 대신 그를 뛰어넘기 위한 제2신화 창조의 삽을 잡자. 60년전의 꼬투리 다툼이 오늘저녁 우리네 밥상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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