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광장-한국 정치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입력 2005-03-02 09:08:37

자연과학에서와는 달리 사회현상을 다루는 사회과학, 특히 사회구성원들의 정치행위나 정치현상을 연구하는 정치학분야에서 하나의 인과법칙을 발견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런 정치학분야에서 법칙으로 혹은 이에 비견될 정도로 높이 평가받는 몇 안 되는 이론이 있는데, 듀베리제라는 프랑스 정치학자가 제시한 '듀베리제의 법칙(Duverger's Law)'과 블랙이라는 정치학자에 의해 제시되고 이후 다운스와 콕스라는 미국 정치학자들에 의해 발전된 '중앙투표자정리(Median Voter Theorem)'가 그러한 것 중 하나이다.

이 두 이론은 모두 정치적 대표자를 선출하는 방식에 그 분석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으나, 그 차이가 어떤 정치적 결과를 초래하느냐에 대한 부분에서는 상이점을 드러낸다.

듀베르제의 법칙은 선출방식의 차이에 따라 정당체제의 유형이 달라진다고 주장한다.

가장 많이 득표한 한 사람을 선출하는 다수결제 방식, 국회의원선거의 예를 들어 소선거구제가 채택된 경우에는 양당제(兩黨制)가, 정당이 획득한 표에 비례하여 의석수를 분배하는 비례대표제에서는 다당제(多黨制)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최다 표를 얻은 1인을 선출하는 소선거구제 하에서 큰 정당은 득표율보다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하는 반면, 작은 정당은 득표율보다 적은 의석을 얻게 되는 정치적 현실에서 출발한다.

이 점 때문에 유권자들은 자신들이 선호하는 후보가 작은 정당 출신이면 당선확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게 되며, 이 경우 자신들의 표가 사표(死票)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유권자들은 자신이 싫어하는 정당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 자신이 원하는 후보가 아니라 큰 정당후보 중 자신들의 정치적 선호에 가까운 후보에게 표를 던지게 되며, 그 결과 큰 두 개의 정당만이 살아남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 비례대표제의 경우는 비록 작은 정당이라 하더라도 그 정당이 득표한 만큼 의석수를 배정받기 때문에, 사표가 발생할 우려가 없다.

이 점 때문에 유권자들은 자신들이 선호하는 후보가 비록 작은 정당의 후보라고 하더라도 그 후보에게 투표하게 되며, 그 결과 작은 정당들도 존립할 수 있게 되어 다당제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 중앙투표자정리는 선출방식의 차이에 따라 정당의 이념이나 정책성향이 달라진다고 주장한다.

다수결제 선출방식이 채택된 경우에, 유권자들이 이념적으로 좌에서 우로 분포되어 있을 때 중앙에 위치한 유권자들의 지지가 선거승리의 결정적인 변수가 되기 때문에 경쟁자들은 이들의 지지를 획득하기 위해 중앙유권자에 맞추어 그들의 정당이념이나 정책성향을 바꾸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주장은 유권자들이 투표를 할 때 이념적 선호라는 하나의 차원에서 판단을 하고 경쟁자가 둘이라는 전제조건이 갖추어진 경우에 있어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두 이론은 특히 현재 벌어지고 있는 한국의 정치상황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이론적 단초를 제공해준다.

듀베르제의 법칙은 어떻게 해서 노동자세력의 대표를 국회에 진출시켜 보려던 노력들이 실패를 거듭하다 비례대표제가 일부 도입된 17대 총선에서야 원내에 진입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중앙유권자정리는 왜 최근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워크숍과 연찬회에서 각각 '능력있는 진보'와 '개혁하는 보수'를 선언하면서 여당은 '우'로 야당은 '좌'로 당의 노선을 변화시키려 노력하는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뿐만 아니라, 이 이론들은 현재의 정치변화와 관련하여 정치권이 간과해서는 안 되는 부분까지도 말해주고 있다.

가령 민주노동당의 경우, 현재의 국회의원선거제도가 비록 비례대표제가 일부 도입되기는 했지만 다수결제 원칙의 소선거구제가 주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다음 선거에서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하기를 바란다면 현재의 당 노선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지적해 준다.

또한 당의 노선을 변화시키려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시도에 대해서도 중요한 점을 말해주고 있다.

두 정당이 모두 중앙유권자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일 때, 한나라당과는 달리, 열린우리당의 경우에는 대신 선택할 수 있는 정당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에 불만을 갖는 기존의 지지층이 그 쪽으로 말을 바꾸어 탈 수 있다는 점이 바로 그 것이다.안용흔·대구가톨릭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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