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 수도산 산행
뺨을 얼리는 칼바람, 옷 속을 파고드는 추위, 푹푹 빠지는 눈길. 왜 겨울산행일까. 겨울산은 다가가지 않고는 묘미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남해까지 봄이 치고 올라왔다지만 아직은 오락가락하는 날씨. 막바지 겨울과 이별연습을 위해 김천 증산湧?수도산을 찾았다. 수도산은 대구에서 가까우면서도 아직까지 눈을 밟을 수 있는 몇 안되는 곳 중의 하나다.
수도산은 눈 천지다. 오를수록 양도 많아져 다져진 등산로를 벗어나기만 하면 이내 발목까지 눈이 올라선다. 기온에 따라선 의외의 겨울풍경을 맞볼 수도 있다는 것이 수도산 산행의 묘미. 지난 주 대구에선 겨울을 떠나보내는 비가 내렸다. 이후 첫 주말이었던 지난 20일. 산 위엔 분명 눈이 내렸을 것이란 얄팍한 계산에 수도산을 찾았다가 뜻밖의 수확을 얻었다. 좀처럼 보기 힘든 설화와 상고대, 빙화 등 세 가지 겨울꽃을 산행 내내 즐길 수 있었다.
합동산행에 나선 대구광역시 산악연맹 가맹단체 회원들과 청암사 입구에 내릴 때까지만 해도 적잖이 실망했다. 기대만큼 눈이 보이지 않았지만 이 불만은 오래가지 않았다.
청암사 왼쪽으로 산행 들머리를 잡았다. 청암사를 둘러볼 여유는 없었다. 하긴 청암사는 비구니 강원(승가대학)으로 매일 예비 비구니스님들의 경전 공부와 울력이 이뤄지는 곳이다. 가능하면 접근하지 않는 것이 이들을 돕는 것이기도 하다.
산을 오르기 시작하자 이내 눈밭이다. 최소한 눈 산행은 가능하다는 생각으로 부지런히 오른다. 눈길을 오르기를 1시간여. 능선에 올라서자 바람이 매섭다. 귀와 뺨이 얼얼하다. 옷깃을 여미고 길을 재촉하는 순간 앞서가던 사람들이 감탄사를 쏟아낸다. 고개를 들자 상상하지도 못한 풍경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온 나무들이 크리스마스 장식을 한 나무처럼 햇빛에 반짝인다. 눈이 부셔 쳐다보지도 못할 정도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뭇가지마다 얼음을 달고 있다. 빙화다. 눈꽃이나 상고대가 낮동안 녹아서 흘러내리다 날이 추워지면서 나뭇가지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이곳에서 정상으로 오를수록 상고대와 눈꽃까지 합세해 겨울꽃 잔치는 절정을 이룬다. 마침 맑게 갠 파란 하늘과 흰 눈, 반짝이는 얼음이 환상적인 그림을 만들어낸다.
이곳까지 줄지어 차근차근 산을 올랐다면 여기서부터는 정체구간이다. 경치가 괜찮고 전망이 좋은 곳은 어김없이 사진을 찍느라 야단이다. 하긴 설화든, 상고대든, 빙화든 산을 오른다고 다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후조건이 딱 맞아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눈꽃은 바람의 세기와 기온에 따라 모양도 다르다.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눈꽃이 더 소담스럽다.
3시간여 만에 오른 수도산 정상은 설국이다. 나무들도 온통 눈꽃을 쓰고 있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흰 세상일 뿐. 눈이 부시다. 멀리 가야산을 비롯해 능선따라 순백의 세상이 펼쳐져 있다. 단지봉으로 가려면 정상에서 20여m를 도로 내려와 오른쪽으로 길을 잡아야 한다. 10여m 높이의 비탈을 오르면 수도산 정상이 눈앞에 펼쳐진다. 정상에서 이쪽을 보던 풍경과는 또 다른 맛이다.
아홉사리재를 거쳐 수도리로 내려오는 길에서도 한참 동안 설화, 상고대, 빙화들의 잔치는 계속된다. 다만 오후 들면서 빙화도 많이 녹아내렸다. 밤에 기온이 많이 떨어지면 다시 얼어붙겠지만 이 아름다운 모습을 언제까지 보여줄지 아쉽다.
정상에서 오르던 길을 되돌아가 절고개에서 수도암을 거쳐 수도리로 하산해도 된다. 수도산 위쪽에 자리잡고 있는 수도암은 통일신라 때 도선국사가 창건했다. 3층석탑 등 천년을 넘긴 보물급 문화재 3점이 있다. 수도산에서 가야산까지 산행은 8시간 거리다. 하산 길은 미끄러우므로 아이젠은 필수다.
◇가는 길=대구-성주읍-김천 대덕면으로 이어지는 국도 33호선-금수면-증산면 평촌리에서 좌회전-청암사
◇산행코스=청암사-지장대-갈림길-삭다리재-1070봉-절고개-수도산 정상-아홉사리재-수도리(산행거리 9.5㎞, 점심시간 제외 순수산행 시간 5시간)
글·사진 박운석기자 stoneax@imaeil.com
사진: 수도산 아래 동봉을 지나 하산하면서 본 산자락. 산 아래쪽은 봄을 준비하고 있지만 산 위는 아직 한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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